중국 위안화 절상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미국과 중국 간 '환율전쟁'이 흐지부지돼버렸다. 오바마 미 대통령의 방중으로 모종의 조치가 나올 법 했지만 정작 두 나라 정상회담에선 언급조차 없었다. 오히려 공동책임을 바라는 미국의 기대에 "중국은 G2가 아니다"라며 '노(NO)'라고 분명히 선을 그은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발언에서 보듯, 중국의 높아진 위상을 재확인한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위안화 절상이 완전히 물건너간 것은 아니지만, 이번 일은 환율전쟁이란 역시 '파워게임'이라는 점을 보여줬다는 게 시장의 시각이다.

우리 증시에서는 원 · 달러 환율이 큰 변수다. 수출비중이 높은 대형 블루칩들이 환율 하락으로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란 전망에 상승세가 주춤해지고 있어서다. 특히 외국인들이 이런 우려를 들어 주식매수를 꺼리고 있다.

환율이 지금처럼 달러당 1150원 안팎이 적정한지, 더 내려야 하는 것이 좋은지는 각각 장단점이 있는 만큼 한마디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이 시점에서 필요한 일은 우리 외환시장의 규모를 늘려 힘을 키워야하는 것이라고 본다. 환율이 파워게임의 대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장차 있을 지 모를 해외 핫머니 등의 준동에 미리 대비하자는 뜻이다.

최근 정부가 은행 등의 외화 건전성 강화에 나선 것은 적절한 조치다. 글로벌 금융위기 과정에서 은행들의 취약한 외환 수급이 외부세력의 공격을 부른 빌미가 됐던 점에 비춰볼 때 자금의 미스매칭(수급 불균형) 여지를 미리 없애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여기에 국내 증권사 등 금융회사를 우리 외환시장의 건전한 '플레이어'로 참여시켜 방어력을 키우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지난해 10월 환율이 1600원 가까이로 급등해 전체 경제에 비상이 걸렸지만 당시 외환시장의 하루 거래대금은 40억달러 안팎(6조원가량)에 불과했다. 작년 11월엔 4조원을 밑돌기도 했다. 요즘 하루 거래대금이 6조원인 주식시장과 비교했을 때 극히 적은 규모다. 그런데도 당시 대기업들이 수출대금까지 동원해 환율방어에 나서야 했을 정도로 외부세력에 휘둘렸던 경험을 상기하면 무엇보다 외환시장 거래규모를 늘리는 것이 시급하다.

국내 증권사만 해도 현재 자기자본이 2조원을 넘는 곳이 5개사에 달한다. 물론 외환시장에서 이만한 자금을 굴릴 회사도 없고 그렇게 하도록 해서도 안 된다. 다만 금융감독당국이 이들의 외환 수급사정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고 외환 취급비중 통제도 가능한 점을 감안하면 이들을 선의의 시장참여자로 끌어들이는 것은 시장 체력 강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다.

또 차제에 경제 전체의 외환수급 현황과 향후 스케줄을 한눈에 꿸 수 있는 종합상황실 같은 기구도 필요하다. 지하철이 차질없이 운행되도록 관리 · 통제하는 교통상황실처럼 외환상황실을 두면 자금의 미스매칭 등 약점을 미리 찾을 수 있고 예기치 않은 일이 닥쳐도 대책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위기와 기회는 소리없이 찾아온다고 한다. 평상시에 대비하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금융위기를 벗어나고 있는 지금,취약한 외환시장의 힘을 키우는 방안을 진지하게 모색해야 할 때다.

문희수 증권부장 m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