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처럼 듣기만 해도 마음이 풍족해지는 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이 눈앞에 다가왔다. 전통 농경사회에서 오곡백과를 수확하는 시기에 추석이 있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라 하겠다. 그렇게 풍성한 추석이기에,어른이 돼서도 추석과 관련해서는 저마다의 추억들이 진하게 남아있나 보다.

어릴 적 추석 명절은 어른,아이 할 것 없이 가장 손꼽아 기다리던 날이었다. 추석을 앞두고 엄마 손을 꼭 잡고 설레는 마음으로 오일장에 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아이들은 혹시나 하는 기대로 새 옷과 새 신발을 기다렸다. 또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차례 음식을 장만하며 그동안의 안부를 묻고 정담을 나누었다. 온 동네가 마치 행복한 잔치를 준비하듯 함께 모여 음식을 만들었던 그 장면들은 아직도 내게 너무나 포근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특히 밤을 넣고 예쁘게 빚은 송편,앞마당에 주렁주렁 열린 빠알간 홍시,무쇠 솥뚜껑을 뒤집어 놓고 그 위에 지글지글 부친 전 등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은 배고픈 그 시절에는 축복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런 추석의 풍속도도 세월에 따라 많이 변하는 것 같다. 직장생활에 지친 사람들은 가족여행을 떠나기도 하고,교통대란을 피해 미리 성묘를 다녀온 사람들은 도시에 남아 자기만의 시간을 즐기기도 한다. 제사음식을 장만하는 것에 기력을 쏟을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전문점에서 음식을 사다가 제사를 지내기도 한다. 고향 부모님을 만나서도 차가 밀릴 것을 염려해 서둘러 도시로 돌아와야만 한다.

과거에 비해 물질적으로는 훨씬 풍요로워졌지만 과연 우리들이 더 행복해졌는지는 반문해 볼 일이다. 시대에 따라 가치관과 삶의 환경이 변하니 그 속에서 살아가는 개개인의 생활방식이 변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좋은 전통들이 점점 사라져 가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찌할 수가 없나 보다.

이렇게 시대에 따라 많은 것이 변했다고 하지만 아직 변하지 않은 것들도 있다. 추석에 찾아가는 '고향'은 어릴 적 향수와 함께 우리에게 메마른 도시생활에서 느끼기 힘들었던 포근한 안식을 제공한다. 각자 치열하고 바쁜 삶이지만,그 삶은 잠시 접어두고 풍성한 한가위를 맞이해보자.자연이 준 수확의 기쁨을 만끽하고,귀한 햇곡식들로 맛있는 송편도 빚고,오랜만에 만나는 정겨운 가족들과 덕담도 주고받으며 아름다운 옛 추억으로 재미있는 이야기 타래를 풀어보는 한가위.아~ 정말 생각만 해도 충분히 행복하고 아름다운 명절이다.

김순진 놀부NBG회장 kimsj@nolb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