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지강(生存之强)'

1929년의 대공황에 버금가는 경기 침체가 지구촌을 뒤덮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전 세계 실물 경제가 급속히 침체되면서,특히 수출 비중이 높은 국내 기업들은 외환위기 당시보다 더 큰 충격에 빠진 양상이다. '강한 기업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살아남는 기업이 강하다'는 말이 유행처럼 번질 정도로 상황은 절박하다.

생존을 위한 기업들의 몸부림도 처절하다. 사방을 가늠할 수 없는 혼돈의 정글을 탈출하기 위해 지금까지 익숙했던 과거의 패러다임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질서를 수혈하려는 움직임이 부산하다.

신발 끈을 다시 졸라매는 최고경영자들의 출사표도 사뭇 비장하다.

"모든 위대한 변화는 언제나 비상한 위기 속에서 이뤄졌다. 불황일수록 후회 없는 도약과 성장을 향한 최선의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추운 겨울에 솔잎이 더 푸르듯 진정 강한 기업이라면 위기를 기회로 승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박용현 두산그룹 회장)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불확실한 경영 환경을 돌파하기 위해 기업들은 새로운 성장 엔진을 발굴,척박한 환경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 저마다 처한 사정은 다르지만 기업들이 전략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승부수는 대체로 '신 · 재생 에너지''신시장 개척'으로 요약된다.


◆차세대 성장 동력 '신 · 재생 에너지'

기업들은 '신 · 재생 에너지' 사업에서 새로운 활력을 찾고 있다. 본능적인 감각으로 '저탄소 녹색성장'이라는 도도한 물결을 읽은 기업들은 경쟁적으로 신 · 재생 에너지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SK그룹은 △무공해 석탄에너지 △해양 바이오연료 △태양전지 △이산화탄소 자원화 △그린 카 △수소연료전지 △첨단 그린도시(U-eco city) 등 '그린사업 7대 중점과제'를 선정했다. 단순한 사업 다각화 차원이 아니라,2015년까지 저탄소 녹색성장 시대를 선도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비전을 바탕으로 나온 결과물이다.

올해를 '친환경 자동차' 양산의 원년으로 삼은 현대 · 기아자동차도 그린(green) 물결을 타고 있다. 유가 상승과 환경 규제가 친환경차 시대를 더욱 앞당길 것으로 예상하고 있어서다. 현대 · 기아차는 우선 오는 7월에 준중형 세단인 아반떼 LPI 하이브리드 카를 시판하는 것을 비롯해 2012년까지 수소 연료로 달리는 차량을 개발할 계획이다.

현대중공업,두산,효성 등은 기존 중공업 조선 기계 사업을 발판으로 진출이 비교적 손쉬운 풍력,태양광 등에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충북 음성군 소이공업단지에 태양전지 생산 공장을 완공한 데 이어 올해 2월에는 전국 군산에 국내 최대 규모의 풍력발전기 공장 설립에도 착수했다.

두산중공업도 풍력발전과 연료전지 등 신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두산은 아시아 최초로 3㎿급 육 · 해상 풍력발전시스템(WinDS3000TM)을 2010년부터 상용화할 예정이다. 기존 핵심 사업인 중공업 분야의 기술 역량을 바탕으로 10년 전부터 풍력발전 시스템을 개발해 온 효성은 국내 최대 용량인 2㎿급의 풍력발전 시스템도 개발을 완료,상용화를 앞두는 등 국내 풍력발전 기업의 선두 주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포스코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아예 차세대 성장동력을 '그린 에너지'로 결정한 포스코는 기존 철강사업과 병행해 연료전지,태양광 발전 사업에 대한 대대적 투자에 나설 방침이다.

포스코가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분야는 연료전지 사업.이를 위해 내년 말까지 100㎿ 규모의 세계 최대 발전용 연료전지 생산공장을 건설할 예정이다. OCI는 2007년 태양광 산업의 핵심 원료인 폴리실리콘 원천기술 개발에 성공,5000t 규모의 생산 공장을 준공했으며 지난해 3월부터 상업 생산에 돌입한 상태다.


◆더 넓은 세상으로… '신시장 개척'

그동안 구축한 영역에 안주하지 않고 활동 무대를 더욱 넓히기 위한 '프런티어(frontier)' 정신으로 재무장하고 있는 현상도 특기할 만하다. 수출선 다변화 등 해외 거점을 늘리기 위해 지구촌 곳곳을 파고드는 것은 물론 기존 사업군을 발판으로 사업 다각화에 나서려는 움직임도 포착된다.

㈜한진은 미주 및 중국의 물류 거점을 확대하고 유럽과 아시아 지역의 신규 물류거점 구축은 물론 해외 유수 물류업체와 협력관계를 강화하기로 했다. 해수담수화 사업 분야 세계 1위의 경쟁력을 갖춘 두산중공업은 여세를 몰아 수처리 시장까지 석권하겠다는 비전을 마련했다. 이에 따라 중동 지역에 치중했던 시장을 중국,인도 등으로 넓히고 플랜트 건설 외에 부가가치가 높은 유지보수,운영 분야에도 손을 댈 계획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선박 수주 가뭄이 장기화될 것에 대비,해양플랜트 사업을 통해 이를 보완하기로 했다. SK에너지는 지난해 베트남,콜롬비아 등의 유망 탐사광구를 확보한 데 이어 올 들어 카자흐스탄,브라질,오만 등의 광구사업에 참여하는 등 해외 자원 개발에 가속도를 내고 있다. 이와 함께 페루와 브라질 등 남미권을 비롯해 카자흐스탄,북해 지역 등으로 유전 지분 참여 투자를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도 불황 타개를 위한 다양한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은 불황으로 세계 여객 수요와 화물 수요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항공기 3대를 추가로 도입하는 등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중 · 장기적으로는 미주 노선 점유 비중을 확대할 계획이다. 대한통운은 베트남 지역 항만운영 사업에,금호석유화학은 '휴그린'이라는 브랜드를 통해 프리미엄 건자재 시장에 진출했다.

STX그룹은 해양플랜트 사업과 관련,브라질과 서아프리카 등 신규 시장 진출을 통해 시장 점유율을 대폭 높여 나가겠다는 복안을 세우고 있다. 현대그룹은 러시아 등 북방 지역에서의 에너지자원 개발 등을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모색하고 있다.

이정선 기자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