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협 < 한국생산기술연구원장 keykim@kitech.re.kr > 김치 파동으로 전국이 떠들썩한 가운데,직접 김장을 담그겠다는 주부가 70%에 이른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김장철이다. 배추 절이랴,김칫독 묻을 구덩이 파랴, 하루종일 수런거리던 어릴 적 김장날의 마당 풍경이 떠오른다. 배춧잎 하나를 뜯어내 시뻘건 속을 듬뿍 얹은 후 먹기 좋게 돌돌 말아 한 입 가득 넣어주시던 어머니의 손길도 그립다. 매우면서도 고소하고,달짝지근하면서도 쌉쌀하던 김장 김치의 첫 맛을 잊을 수 없다. 한국인들의 뛰어난 손기술이 쇠 젓가락 때문이라는 보도 이후 젓가락을 사용하는 유럽인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갖은 양념을 활용해 음식을 조리하는 습성 역시 손기술 발달에 큰 몫을 했다고 믿는다. 우리 음식 중에는 특히 삶거나 데쳐서 무쳐 먹는 것들이 많은데,여성들은 이러한 과정에서 손과 눈의 협업능력을 키우게 된 듯하다. 양궁이나 골프처럼 한국여성들이 유독 손과 눈의 협업능력을 요구하는 분야에서 탁월한 성적을 내는 이유도 거기 있을 것이다. 칸트가 손을 '보이지 않는 뇌의 일부'라고 했듯이 손이 두뇌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60~70년대 눈부신 경공업 성장의 주역도 손기술에 능한 저임금 여성노동자들이었다. 그 후 중공업 육성 정책에 밀려 잠시 주춤했던 한국 여성들이 지식경제시대를 맞아 다시 그 저력을 입증하고 있어 반갑다. 사법·행정고시를 비롯한 각종 국가고시에서 여성 합격자 수가 크게 늘고, 전체 여성 취업자 수도 1000만명을 바라보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반도체,TFT-LCD,휴대폰 등의 전자·정보산업 생산라인 곳곳에서 젊은 여성인력들이 맹활약하고 있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아직은 우리 사회의 기반이 여성들의 실력을 받쳐주지 못하고 있는 듯해 안타깝다. 우선 30대 여성 취업자 수가 40대보다 적다. 한창 일할 나이에 육아문제 등으로 일터를 떠나야 하는 여성들이 많은 탓이다. 고용형태 또한 임시직 비정규직이 많아 남성소득의 48%에 불과하다. 고위·관리직 비율도 6%에 그치고 있다. 30%를 웃도는 선진국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21세기는 감성경영시대라고 한다. 따라서 손과 눈의 협업능력이 뛰어난 한국여성들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국가 경쟁력이 달라질 수도 있다. '한국이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여성 인력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에드워드 프레스콧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의 말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