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윤 석 < 시인 > 2008년 5월8일 서울에 사는 P씨(여·47)는 아이들이 꽂아준 카네이션을 왼쪽 가슴에 달고 차를 몰아 수목장 공원인 '자연장수목원'으로 향했다. 폐암 말기 시한부 삶을 선고 받고 지난 2개월 동안 죽음을 차분하게 정리해왔던 P씨는 '한국죽음학회'에서 마련한 '아름답게 돌아가는 법' 연수 프로그램까지 마치고 이제 생이 끝나면 묻힐 '자연장수목원'에 미리 예약해둔 자신의 너도밤나무를 보러가는 길이다. P씨가 고통을 참으며 이 길을 택한 것은 자신의 병으로 인해 병원비의 과다 지출이 싫었던 것은 물론 무엇보다 혼수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하기가 싫었기 때문이었다. 이곳은 보건복지부와 산림청,산림조합과 서울시립장묘문화센터의 공동노력으로 시범 설립돼 신뢰성 면에서 우수해 P씨는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는 죽어 한 그루 나무가 된다는 수목장(樹木葬)에 처음부터 끌렸다. 온전히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물론 자신의 뼛가루가 나무의 자양분이 돼 이 다음에 식구들이 찾아오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줄 수 있으리라 싶었다. "나 죽으면 여보,화장해서 나무 밑에 묻어주라. 그리고 뼛가루 묻을 때 6월의 붉은 장미 마흔일곱 송이도 함께 묻어주라. 일년에 한 번은 찾아와서 내 나무를 나 본 듯이 안아주라. 응? 그렇게 해주면 내가 제일 큰 가지를 들어 당신을 환영해 줄게." 남편은 울고만 있었지만 P씨는 며칠 전 밤에 한 말을 떠올리며 많은 위안을 받았다. 최근 들어 우리 사회에 산림포럼의 수목장 연구와 한국죽음학회 출범 같은 죽음의 사회학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다행스런 현상이다. 웰빙(Well-being)에 이어 웰다잉(Well-dying)의 패러다임이 한국사회에 급속도로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잘 먹고 잘 사는 법'만 생각했지 '잘 죽는 법'은 미처 생각지 못하고 살았다. 오죽하면 '개똥으로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했을까. 이로 인해 죽음에 대한 아무런 준비 없이 산소마스크를 쓴 채 병원에서 돌아가는 일이 태반이었다. 화장이 늘어나긴 했지만 죽음 이후에도 우리 선인들은 그야말로 온전히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잘 썩지 않는 관에 들어가 봉분을 덮어쓴 채 수십년간 묻혀 있다가 개장돼 화장되고 다시 뿌려지거나 납골함에 갇히기 일쑤였다. 아니면 납골묘나 납골당에 들어가는 게 고작이었다. 납골묘는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기존의 묘지보다 더 많은 폐해를 낳을 것이다. 납골평장도 지하의 습기로 말미암아 많은 문제점을 야기할 것이다. 이에 비해 수목장은 자기 자신이 죽음이 되면서 삶이 되는 장법이요,대지로 온전히 돌아가는 장법이다. 또한 나무와 하나가 돼 하늘을 향한다는 인식의 기저에 한국인의 승천(昇天) 의식,인간은 하늘과 통할 수 있다는 우리 민족의 전통적 우주관까지도 잇닿아 있다. 그동안 가족해체 등 시대가 변했는데도 묘지강산을 만들고 있는 매장과 비선호시설인 납골당 밖에는 대안이 없었던 사회가 우리 사회요,죽음의 준비에 대한 교육과 시스템이 전무한 사회가 우리 사회였다. 최근의 수목장에 대한 활발한 연구 활동과 죽음에 대한 학문적.미학적.의학적 접근을 반기는 까닭은 이러한 우리 사회의 죽음에 대한 무지 때문이다. 의제는 여전히 숙제로 던져져 있다. 수목장을 숲의 개념으로 볼 것이냐,묘지개념으로 볼 것이냐의 문제도 있을 것이고 죽음의 준비에도 생명의 연장 시각과 아름다운 생의 정리들 사이의 괴리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 세상의 약삭빠른 계산들이 끼어들어 사회 일각의 새로운 뜻이 손상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저 박상륭 선생의 소설 '죽음의 한 연구' 이후 처음으로 죽음에 대한 개념을 제대로 정리하고 '자연에서 왔으니 다시 자연으로 참 선하게 돌아갈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만나게 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