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조중훈 회장은 재계 8위권의 한진그룹을 일군 창업주답게 숱한 경영일화를 남겼다. 때로는 뭇 기업인들이 부러워했던 신화였고 때로는 모든 샐러리맨들이 소주잔을 기울이며 주고 받던 뒷골목의 얘기이기도 했다. 어쨌든 조 회장이 남긴 족적에는 그의 경영철학과 기업관이 잘 녹아 있다. 고인은 생전에 "떡장수는 떡만 팔아야 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 백화점식 경영과 사고방식으로는 무엇 하나 뚜렷이 이루기 어렵다는게 그의 지론이었다. 고인은 창업 초기부터 눈앞에 보이는 이득보다 신용을 더 중시했다. 1956년 주한 미군의 용역사업에 참여했을 당시의 일화는 고인의 이런 경영철학을 잘 보여준다. 어느날 임차해 쓰던 트럭의 운전사가 미군의 겨울 군복인 파카를 트럭째 남대문 시장에 팔아 넘긴 사고가 발생했다. 그는 남대문 시장에 직원을 상주시켜 놓고 나도는 분실물건을 일일이 추적, 웃돈을 주고 모두 회수해 미군측에 다시 납품했다. 큰 손실을 봤지만 대신 미군들의 확고한 신용을 얻을 수 있었다. 이때 쌓은 신용이 바탕이 돼 한진은 월남전 때 국내 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미군의 군수물자 수송에 참여할 수 있었다. 고 조 회장은 또 집념과 뚝심의 경영인으로 통했다. 실제 그는 목숨을 걸고 사업을 일궈냈고 그 결과 한진을 육.해.공에 걸치는 종합 수송물류그룹으로 성장시켰다. 총탄이 빗발치는 월남전 정글에서의 군수물자 수송은 고인의 집념을 단적으로 엿볼 수 있는 예다. 고인은 유달리 애국심이 강한 경영인이었다. 오늘날 전세계 하늘을 누비는 대한항공은 그의 애국심이 아니었다면 오래전에 사라졌을 것이다. 회사 중역들의 완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1969년 국영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한 것은 "우리나라 사람이 국적기를 타고 해외 나들이를 가게 해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적자투성이였던 항공공사 인수는 회사의 운명을 가를 수도 있는 큰 모험이었지만 고인은 결국 보유항공기 1백13대를 갖춘 세계 10대 항공사 반열에 올려놓았다. 강동균 기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