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서울 서초구에 사는 친구 집을 방문했다. 4인 가족이 살기엔 아파트가 너무 작고 낡아보여 "강남 아파트값이 많이 올랐으니 신도시의 넓은 아파트로 이사를 가보지"라며 넌지시 물었다. 친구의 대답은 이랬다. "교육여건이 좋고 문화공간도 풍부하고 뉴욕 도쿄 부럽지 않은 쇼핑천국이어서 집사람과 아이들이 이 곳에 산다는 것 자체에 '프라이드'를 느끼는 것 같다." 친구는 이어 "강남 아파트 값은 명문 골프장의 '멤버십'과 같은 성질을 띤지 오래 됐는데 정부는 아직도 부동산문제를 '주택 수급'이라는 낡은 방식으로 단순하게 접근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부동산 전문가도 아닌 평범한 은행 직원이 '강남발 부동산문제'의 정곡을 찔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3일 후인 지난 12일 강남 아파트시장 과열을 잠재우기 위해 양도세 재산세를 대폭 인상한다는 정부 부동산 대책이 나왔다. 이제 해결된 걸까. 단언컨대 아니다. 나라 안팎의 경제상황이 곤두박질쳐 거품이 일시에 빠지는 상황이 닥치면 모를까,부동산시장 자체만 놓고 볼 때 이번 대책은 '아니올시다'이다. 최근 잇따라 나온 대책들은 문제의 본질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지금의 부동산문제는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 10년간 뒷걸음질쳐 온 '주택도시정책'의 결과물에 다름 아니다. 90년대 초반 이후 주택도시정책은 국민소득과 소비(상품수요) 수준이 '업그레이드'되는 흐름과는 반대로 전개됐다. 이것이 화근이었다. 비록 외환위기라는 사고를 당하긴 했지만 한국은 선진국을 향해 달려왔다. 하필 강남의 고소득층뿐만 아니라 농촌 주부들도 단체로 파리나 런던으로 해외여행을 다니고 서울 근교도시 가정도 주말에는 TGI프라이데이에서 외식을 즐기는 시대가 됐다. 소득증대와 글로벌라이제이션(세계화)에 힘입어 한국인의 눈높이는 소득계층에 상관없이 의식주 전반에 걸쳐 70~80년대와는 비교가 안되게 세련되고 높아졌다. 이처럼 '삶의 질'에 대한 국민의 안목과 감각이 확 달라졌는데도 정부의 주택도시정책은 발전하기는커녕 퇴보해왔다. 과거 군사정권은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강남 과천 목동 분당·일산신도시 건설 등으로 경제발전단계에 맞는 주거공간을 창출하려는 정책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문민정부 이후 계획도시 건설은 '군사정권의 유물'이요 '수도권집중 억제와 지역균형발전을 해친다'는 정치적인 명분론에 밀려 설자리를 잃어버렸다. 시장에 맡긴답시고 국토의 4분의1에 달하는 준농림지를 무제한 풀어 택지로 전용했다. 용인을 비롯해 수도권 준농림지에 아파트 공급이 봇물을 이뤘지만 단지수준은 60~70년대 국민주택단지보다 못한 '난개발'이었다. 이 와중에 분당 일산 등 기존 신도시 관리도 뒷전으로 밀려버렸다. 분당 일산은 '제2강남' 수준으로 발전할 수 있는 '하드웨어'를 갖췄는데도 군사정권의 산물로 '백안시'되면서 대도시경영 경험이 없는 지자체에 맡겨졌다. 이후 주변의 준농림지 난개발과 자족기능의 무분별한 용도변경으로 신도시는 '하향평준화'의 길을 걸었다. 수요자(국민)의 안목은 '질'에 맞춰진지 오래인데도 공급자(정부)는 물량작전으로 무려 10년을 일관해 왔으니 기존 일류 상품(서울 강남)의 가치가 골동품처럼 계속 뛰는 것은 뻔한 일. 정부는 강남 아파트의 재산세와 양도세를 높여 투기를 잡는다고 했지만 결과는 불을 보듯하다. 오른 세금은 집값에 전가돼 강남의 진입장벽은 더욱 높아지고 '강남 특구 현상'은 심화될 것이다. 정부가 시장현실을 외면한 위선적인 정책을 포기하지 않는 한 '강남발 부동산 문제' 해결은 요원할 것이다. lee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