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각국의 금융감독기관을 감독하는 국제기구를 만들어야 할 때입니다"

국제 금융 시스템의 불안정성을 우려하는 원로 학자나 유명 정치인이 한
말이 아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국제 투기자본의 상징적 인물로 치부되는 조지 소로스가
미국 의회에서 행한 증언이다.

미 하원의 은행 및 금융 서비스 위원회는 지난 14일부터 3일 연속,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국제 금융 시장의 위기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청문회를
열었다.

청문회에는 소로스를 비롯하여 루빈 재무장관과 그린스펀 연준리 의장에
이르기까지 각 분야 인사들이 나와 증언했다.

공교롭게도 청문회가 시작되는 14일, 클린턴 미 대통령은 최근의 사태를
반세기만의 최대위기로 규정하고 이의 타개를 위해 선진국들의 경기부양과
개도국에 대한 지원, 그리고 새로운 금융질서의 구축을 주도해 나가겠다고
천명하였다.

다음날에는 미국이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대규모 적자를 감내할 뜻이 있다는
미 국무부 차관의 발표가 이어졌다.

바야흐로 세계경제의 위기상황이 최악의 국면을 벗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본격적으로 세계 금융 위기에 개입하기로 방향을 선회한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미 대통령의 이번 발표에 지퍼게이트 정국을 벗어나고자 하는 의도가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발표는 시점의 문제였을 뿐 이미 미국 정계는 아시아에서
시작된 외환위기의 확산이 급기야 미국의 국익을 위협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고 하는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에서 시작된 외환위기의 불길이 러시아와 중남미로 걷잡을 수 없이
번져 나가고 있는 데는 국제금융 시스템의 취약성에 기인하는 시장
참가자들의 위기의식이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개입선언은 일단 사태를 진정국면으로 이끌
수 있는 전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곧 우리가 외환위기의 위협에서 완전히 벗어났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실질적인 조치들이 취해짐으로써 외환위기의 촉발요인들이 완전히 제거되기
전까지 외환위기는 항상 잠재적 가능성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특히 국제금융시장에 새로운 감독체계가 형성되기 전까지 투기자본의 공격
가능성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설사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의 협조와 개입이 가시화되더라도
외환위기 재발 방지에 허점을 보여서는 안된다.

IMF를 중심으로 한 현재의 국제금융체제는 이번 위기를 계기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새로운 금융체제의 바람직한 모습에 대해 아직 컨센서스가 형성되어 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것은 감독과 규제가 강화되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임에 틀림없다.

우리가 외환위기를 맞게 된 가장 큰 이유도 감독체계가 세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개방이 이루어져 왔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더군다나 IMF 구제금융을 받게 된 이후에는 금융시장 개방을 포함한 각종
규제 철폐가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향후 짜여질 새로운 국제금융질서의 방향이 감독과 규제라고 한다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규제완화 일변도의 정책방향은 이 시점에서 한번쯤
재고해볼 필요가 있겠다.

< 장성현 와이즈디베이스 책임연구위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