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근 <코리아하트카드(주) 사장>

최근 여러 계층의 사람들은 은행이 예전같지 않다고들 한다.

은행의 경직된 창구와 가라앉은 은행원의 사기를 가리키고 있다.

IMF시대 이전까지만 해도 여수신 창구는 늘 북적거렸고 은행원들은
생동감을 가지고 뛰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업무수행 과정에서의 실수로 불이익의 인사가 언제 자신에게 불어닥칠지
모른채 불안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한다.

올해들어 은행은 어디라고 할것 없이 위기에 대응하는 수단으로 숱하게
많은 직원을 조기퇴직 등의 명목으로 은행문을 떠나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 명퇴의 기준에는 부실여신의 책임이 뒤따르고 경우에 따라
해당자의 퇴직금마저 지급을 유보당하고 있다.

은행창구의 책임직원은 무사안일을 최상의 업무방법으로 여기고 있다.

이 여파로 은행창구는 매우 굳어져 있고 점차 친절의 흔적도 찾아보기
힘들게 되어가고 있다.

이는 고금리와 자금수급이 뒤틀려 있는 상황보다 더욱 은행경영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된다.

오늘의 은행은 창구에서부터 역할의 한계를 실감케 하고 있다.

지금 거래고객들은 은행에 대한 믿음의 동요를 일으키고 있다.

은행업은 후진하고 있는 것으로 비쳐진다.

거미줄같은 법규를 신주처럼 여기고 때묻은 관행에 매달려온 은행의
일관되었던 경영체질은 전환되어야 할 때인데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달라져야 할 이유는 많다.

힘없는 고객에게 군림했고, 힘있는 거래선에게는 낮은 자세로 일관했던
업무관행은 탈피되어야 할 과제다.

관치금융과 관련, 대기업이면 여과없이 자금을 퍼주던 속성은 서둘러
고쳐져야 할 일이다.

지금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고 모든 분야에서 현실화의 물결이 세차게
불고 있다.

은행이 예외일 수는 없다.

은행상을 새롭게 정립하는 계기를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은행직원에게는 신념을 가지고 직무에 몰두할수 있는 분위기를, 그리고
은행의 발전상이 특색과 비전이 담겨져 새롭게 제시되어야 할 때다.

따라서 은행의 고유업무는 더욱 계승 발전하는 내용으로 다듬어져야
하지만 새로운 시각에서의 경쟁력을 구축하는 설계도 요구된다.

지금까지의 경우를 보면 그렇지가 못했다.

대형 은행으로 자부되어온 5개시중은행의 예를 봐도 그렇다.

한결같이 똑같은 업무내용만으로 특색도 없이 경쟁적 다툼만 일관하여
왔다.

예대 업무, 외국환 업무, 카드사업등 은행업무는 일직선상에 놓인채
다를게 없다.

조직체계도 또한 같다.

마치 한대의 버스를 타고 여행을 다녀오면 보고 느끼고 듣는 내용이 같을
수밖에 없듯이 5개시중은행의 업무형태가 바로 그러하다.

물론 관치하에서 경영층의 독자성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이제는 보다 새로운 시각의 금융기법이 연구 개발되고 색깔있는 은행이
만들어져야 할 시대가 되고 있다.

참신한 특색은 곧 경쟁력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최근 색깔을 드러내려는 은행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분명히 미래를 지향하는 발상이다.

IMF사태로 혹독한 시련을 겪어왔던 제일은행의 새로운 변신이 바로
그것이다.

문화사업 중흥의 한 부분을 제창하고 나선 것이다.

문화사업을 제창하고 나선 그 은행은 얼어붙은 마음에 따스한 손길을
주려는 발상이다.

스포츠 경기가 국민의 힘과 용기를 북돋우게 하듯이 온 국민에게 문화
예술의 기회를 접할수 있게 만들어 민족의 자긍심을 북돋우자는 것인
것같다.

뿌리깊은 은행의 고유인식을 벗어나서 은행본업을 충실히 수행하면서
국가 사회에 공헌하고 국민생활에서 마음의 풍요를 도모하자고 나선
이 계획이야말로 은행업 사고의 대단한 전환인 것이다.

우리의 문화 예술분야 진흥을 위해 헌신적으로 한부분을 담당했었다고
평가되는 날 그 해당은행은 곧 문화은행으로서의 긍지와 위상을 차지하게
되리라 믿는다.

바로 이것이 색깔이고 은행의 특색이다.

이같은 발상의 결과는 실행의 결실이 맺어지면 국민들 가슴에 환희를
안겨주는 계기를 만들어낸다.

무슨 일이든 전례가 없었던 것을 만들어 실행하기는 쉽지 않다.

이같은 특정은행의 새로운 시도는 온국민, 특히 문화 예술의 관심계층으로
하여금 은행업의 영역을 새삼스럽게 재인식시켜주는 계기가 되리라 믿는다.

이 시대에서의 경쟁력은 고유의 은행업무 만으로는 한계를 가져온다.

은행도 색깔이 있어야 경쟁력에 힘을 얻게 된다.

특정은행의 문화사업제창은 그동안의 진부했던 금융기법과 굳어진
은행사고를 치유하고 새로운 은행상을 정립하는데 강력한 힘으로 작용하리라
기대해본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