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설립당시 소장이었으며 과기처장관을 지낸
최형섭씨의 회고록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소"에 이런 얘기가 있다.

1966년 KIST발족때 그 육성법이 국회에서 골격이 바뀌어 외부에 연구계획
승인및 회계감사를 받도록 제정됐다.

최소장은 다음해 3월 임시국회에 법개정안을 냈다.

국회에서는 시행도 해보지 않은 법을 개정한다고 펄쩍 뛰었다.

최소장은 "날 믿고 통과시켜 달라"고 졸랐다.

한참 실랑이를 하던중에 국회의원 한사람이 "우리가 무슨 과학기술을
아느냐.

소장이 그렇게 말하니 믿고 맡겨보자"고 해서 개정안이 통과됐다.

이것이 나중에 출연연구소들의 자율성확보에 크게 기여했다.

당시의 그 국회의원은 바로 김대중 대통령당선자.

그가 지난 10일 KIST창립 32주년기념식에 참석, 박원훈 원장으로부터
30여년전의 도움에 감사의 인사를 받았다.

KIST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연구기관으로 "이공계연구소의 맏형"의
위치에 있다고 할수있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곳을 여덟번이나 찾을 정도로 관심이 많았다.

전두환 대통령도 두차례 방문했다.

그후 국가지도자로서는 15년만에 김당선자가 들른 것이라고 한다.

김당선자는 이날 기념축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현 국제통화기금(IMF)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길은 수출증대 수입감소
외자도입확대 세가지다.

이 모두 과학기술인의 절대적 공헌없이는 이루기 힘들다.

과학기술을 진흥해 이나라를 선진대열에 진출토록 기초를 만든 대통령으로
남고 싶다.

과학기술계는 지금 흥분해 있는 것같다.

프랑스 드골대통령과 원자력의 발전,미국 루스벨트대통령(32대)과
과학재단의 탄생, 케네디대통령과 우주개발 등은 대통령의 과학기술에 대한
인식이 어떠한 결과를 낳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김당선자는 과학기술부로 바꾸면서 장관을 부총리급으로 격상시킬
생각까지 했었다 한다.

과학기술은 그 속성상 "미래"와 관계가 많다.

때문에 "현재"에 비중을 더두는 지도자나 조직에서는 발전이 어렵다.

국가과학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을 기대해 본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