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하이터치 공동기획-

이면우 <서울대 교수>

작년 초에 한 경영자 모임에서 기업경영에 도움될 이야기를 해달라고
요청하였다.

당시 우리 주변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되고 있던 구호는 "가격경쟁력만이
살 길이다"였다.

그래서 강연 중에 가격경쟁력을 강조하는 정부관료와 기업경영자는 머리에
총상을 입은 사람들 같다고 지적하였다.

왜 총상을 입은 사람 같다고 했는가.

기업활동에서 가능한 한 끝까지 피해야 할 상황이 경쟁사와 가격경쟁을
벌이는 것이다.

왜냐하면 가격경쟁이란 최후의 승자 하나만이 남을 때까지 출혈하면서
벌여야하는 죽음의 경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두들 나서서 죽음의 경기만이 우리의 살 길이라고 한다.

과연 우리가 노력한다면 가격경쟁력으로 살아날 길이 있는가.

우리 제조업은 얼마나 이익을 내고 있는가.

마이크로소프트는 1백원을 팔면 30원이 남고 인텔은 28원, 닌텐도는
16원이 남는다.

우리 제조업의 이익은 1백원을 팔아 1원도 채 안남는 0.9원이다.

그러니 가격경쟁을 계속 하려면 이제부터는 손해를 보고 팔아야 할 판이다.

왜 이렇게 이익이 안나는가.

우리제품은 제조원가가 높은 반면에 판매가는 낮기 때문이다.

가격경쟁을 거론할 처지가 아닌 것이다.

왜 원가가 높은가.

우리 제조업은 5고에 시달리고 있다.

먼저 금리부터 살펴보자.

우리 제조업의 금융비용은 5.6%이다.

1백원을 팔면 5.6원이 이자로 지출된다.

이는 일본 제조업의 평균 금리부담 1.3%보다 네배가 높고 대만 2.2%의
2.5배이다.

앞으로 제조업의 금리부담은 더욱 높아질 것이고,가격경쟁력은 더욱
더 떨어질 것이다.

금리부담이 이렇게 높은 이유는 우리 기업들이 빚을 많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기업의 자기자본비율은 17%에 불과하다.

이는 대만 54%의 3분의1수준이고, 일본 33%의 절반수준이다.

기업운영을 위해 남의 돈을 가져다 쓴 부채비율이 4백~4백50%인 것이다.

이익을 많이 낸 인텔의 부채비율은 30%, 소니의 부채비율은 50%이다.

즉 우리 기업들은 인텔이 지불하는 이자의 15배, 소니의 9배에 해당하는
이자부담을 안고 있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부동산 가격을 보면 어떤가.

우리나라의 땅값은 국내 총생산액의 5.4배이다.

땅값 비싸기로 소문난 일본은 총생산액의 3.5배, 작은 섬나라인 대만은
3.3배이다.

같은 크기의 공장을 짓고 같은 물건을 만든다면 땅값에 투자하는 비용이
일본의 1.5배, 대만의 1.7배나 높은 셈이다.

마치 땅값이 비싼 강남대로 빌딩에 고급점포를 차려 놓고 강냉이를 튀겨
파는 사람이 시골 한적한 공터에서 강냉이를 튀기는 사람과 가격경쟁을
하겠다고 나선 꼴이다.

물류비용은 가격경쟁력이 있는가.

우리나라의 총물류비용은 약61조5억원이다.

이를 환산하면 1백원짜리 물건을 팔아 그중에서 18.7원을 배달료로 쓰는
셈이다.

국내 총생산액과 비교한 물류비용의 비율은 17.5%이다.

이 수치는 미국 총생산액 대비 10.5%의 1.6배, 일본 8.8%의 2배가 된다.

미국과 일본보다 배달료가 1.6~2배 비싼 것이다.

문제점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선진국에서 기술을 도입하면서 약속한 로열티를 내야 하는 것이다.

이동통신과 멀티미디어 제품은 매출액의 약 15%를 선진국 협력사에
내야한다.

1백원짜리제품을 팔면 이중에서 우선 15원이 외국회사에 로열티로
지불되도록 약정된 것이다.

우리의 주력산업들은 모두 이런 수준의 로열티를 내고 있다.

대만도 미국과 일본에 기술료를 내지만 부품산업에 주력하기 때문에 대략
우리의 3분의1~2분의1정도만 내는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임금은 어떤가.

우리 근로자는 시간당 7.4달러를 받고 있다.

국민소득이 2만달러가 넘는 싱가포르 근로자가 받는 7.3달러보다도 높다.

대만의 작업자가 받는 5.8달러와 비교하면 30%가 높고 시간당 90센트를
받는 중국과 비교하면 8배나 높다.

우리보다 임금이 비싼 것으로 알려진 일본과 비교하면 어떤가?

한 예로 자동차 산업에 근무하는 한국 근로자의 연봉은 대략 3만달러로
집계된다.

반면에 도요타 자동차의 평균연봉은 4만4천달러이다.

그러나 도요타 자동차의 생산성은 우리보다 2배가 높으므로 생산성을
고려한 일본 작업자의 연봉은 2만2천달러이다.

그러므로 일하는 효율을 감안하면 우리는 일본 작업자보다 36%를 더 받고
있다.

결국 우리 제조업 임금은 선진국 일본보다도 높고 국민소득이 우리보다
월등히 높은 홍콩 싱가포르 대만보다 높으며 우리제품과 경쟁하는 중국에
비하면 8배나 높다.

이제 요약하여 보자.

우리 기업은 경쟁국보다 2.5~4배의 높은 이자를 내고 1.5~1.7배 비싼
땅에 공장을 지으며 미국과 일본보다 1.5~2배 비싼 물류수송비를 내고 있다.

물건을 하나 팔때마다 기술도입에 따른 5~15%의 로열티를 내야한다.

인건비는 중국보다 8배 비싸고 홍콩 대만보다 30%가 비싸며 생산성을
고려한 실질임금은 일본과 유사한 수준이다.

경쟁국보다 모든 면에서 모든 것이 비싸다.

가격경쟁력만이 살 길인가?

맑은 정신에서 하는 소리는 아닐 것이다.

이제 우리 제품이 당면하고 있는 판매가격구조의 문제점을 분석하여 보자.

1백원짜리 물건을 팔면 이자로 5.6원, 물류비용으로 18.7원, 기술료로
15원이 그 자리에서 나간다.

1백원이 순식간에 60원으로 줄어든 것이다.

여기에다 비싼 토지비용과 높은 임금을 감안하여 10원쯤 빼면 다시
50원으로 내려간다.

반면에 일본은 이자 1.3원, 물류비 8.8원, 기술료 3원으로 87원이 남는다.

더구나 일본은 우리 제품이 팔릴 때마다 가만히 앉아서 받는 로열티
수입이 있다.

우리가 미국 일본에 지불하는 기술료 15원 중에서 일본이 10원쯤
받는다고 가정하면 97원이 될 것이다.

토지비용과 임금은 우리와 똑같이 10원을 뺀다고 하더라도 87원이 남는다.

같은 공장에서 같은 물건을 만들어 똑같은 가격인 100원에 팔았더니 일본은
87원이 남고 우리는 50원이 남는 것이다.

일본과 가격경쟁을 하려면 일본보다 싸게 팔아야 할 것이다.

해외수출전선에서 다년간 온갖 물건을 수출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일본제품과 가격으로 경쟁하려면 일본보다 적어도
20~30%는 더 싸게 팔아야 한다고 하였다.

우리가 거래를 잘하여 일본보다 20% 싸게 판다고 가정하여 보자.

일본이 1백원에 팔면 87원이 남을 것이다.

우리는 80원에 팔아야 하므로, 1백원에 팔았을때 남는 50원에서 또다시
20원을 뺀 30원이 남는다.

30원은 제조업에서 거의 재료비에 해당하는 금액이며 전기수도료,
설비감가상각비는 물론이거니와 관리비와 간접비용, 광고비와 판매비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금액이다.

그렇다면 우리기업들은 이제까지 어떻게 버티어 왔는가?

내수시장을 보호하면서 국내가격을 높게 받으며 연명해 온 것이다.

마치 친척들에게는 비싼 값을 받고 일반에게는 싼 값에 물건을 파는
것과 같다.

이 사람의 구호는 무엇이겠는가?

"친척들이 내 사업을 살려야 한다"이다.

"경쟁력 10% 올리기"란 구호도 있었다.

경쟁력을 10% 올릴 수 있는가?

외국 금융기관이 이자의 10%를 감면해주지 않을 것이고 로열티를 10%씩
깎아주는 선진기업도 없을 것이다.

부동산과 물류비용도 마찬가지이다.

결국 임금경쟁력밖에 남은 것이 없다.

임금을 10% 깎으면 어떻게 되는가?

시간당 7.4달러 받던 것이 6.7달러로 줄어들 것이다.

그래도 중국 임금보다 7.4배,홍콩과 대만보다 16% 높고, 일본의 실질
임금과는 대동소이하다.

이렇게 되면 무슨 효과가 있는가?

80원에 팔아서 30원 남던 것이 31원 남을 것이다.

별 차이가 없지 않은가?

경쟁력 10% 올리기는 해답이 아니다.

가격경쟁력만이 우리의 살 길이라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임금이 중국 수준으로 낮아져야 하므로 월급이 8분의1로 줄어들어야 한다.

일본 대만과 경쟁하여야 하므로 부동산 값도 지금의 절반으로 떨어져야
한다.

기업의 이자부담도 일본 대만 수준으로 4분의1로 떨어져야 한다.

물류수송비용도 현재의 절반수준으로 떨어져야 이야기가 된다.

서울~부산간 소요되는 통행시간도 지금의 2분의1 수준으로 단축되어야
하고 창고 보관비도 일제히 반으로 내려야 한다.

운동경기에서 우리팀이 계속 실점을 하면 관중들은 작전을 바꾸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우리의 과거 작전은 가격경쟁력이었으나 모든 면에서 중국은 물론이고
대만 홍콩 싱가포르와도 상대가 될 수 없는 열세이다.

또한 높은 기술료를 지불하는한 일본과의 경쟁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작전을 바꾸자 그렇다면 새로운 작전개념은 가격을 높여 받을 수 있는
가격결정권을 확보하는 길이다.

우리 제품은 얼마나 더 받아야 경쟁이 되는가?

높은 금리를 보완하기 위하여 4%, 물류비용을 상쇄하기 위하여 8.5%,
로열티 지불 15%를 더한 값, 즉 27.5%가 더 비싼 가격을 책정하여야 한다.

여기에다 비싼 땅값과 높은 임금을 감안한다면 일본보다 최소 30%가
더 비싼 제품을 만들어야 "가격경쟁력"이 생길 것이다.

즉 우리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려면 가망없는 원가절감에 매달리지 말고
가격인상 방안을 집중적으로 연구하여야 한다.

높은 금리를 지불하고도 장사가 되는 사업을 찾아야 한다.

지가가 높으면 고층 공장을 짓든가 땅값이 싼 나라로 가든가,이도
저도 안될 경우에는 포기하여야 한다.

물류비용이 높으면 해외에서 생산을 하든가 아니면 부피가 작은
제품쪽으로 관심을 돌려야 한다.

로열티를 내는 제품은 기술료를 내고도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비싼 가격의
물건을 만들어야 한다.

일본보다 최소한 30%를 더 비싸게 받아야 할 것이다.

제품가격을 높이고도 물건을 팔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고부가(High Touch)제품이라면 가격을 인상할 수 있을 것이다.

독특한 제품은 비싸도 팔릴 것이다.

경쟁상대가 없는 제품도 가격인상이 가능하다.

이제 우리가 맑은 정신을 되찾아 채택하여야 할 올바른 구호는 무엇인가?

"가격결정권만이 살길이다"

가격결정권은 어떻게 획득하는가?

우리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