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필화 < 성균관대교수.경영학 >

우리는 무한 경쟁시대에 살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경쟁사를 이기고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모든 기업이
그야말로 생존을 위한 싸움을 끝없이 계속하는 시대이다.

더구나 요즈음처럼 전반적으로 경기가 불황일 때는 그 경쟁의 강도가 더욱
세지게 마련이다.

누군가가 말한 마케팅전쟁(marketing warfare)이란 표현이 아주 적합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현대의 전쟁 아닌 전쟁을 바라보다 보니 생각나는 역사상의 두
전투가 있다.

1894년 10월 20일께부터 20여일 동안 동학혁명의 성패를 결정짓는 전투가
공주부근에서 벌어졌다.

당시 동학군은 일본군.조선관군과는 비교도 안되는 강한 정신력으로 무장
되어 있었다.

유난히도 추웠던 그해 11월 그들은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하고 찬밥덩어리를
먹으며 찬바람 속에서 동상에 걸리는 악조건을 무릅쓰고 20여일 동안이나
전투를 벌였던 것이다.

양쪽 군대는 11월 9일부터 4일간 우금치에서 최후의 일전을 벌인다.

당시 농민군은 산 위 40리에 걸쳐 진을 쳐 마치 사람으로 병풍을 친 듯
기세가 당당했다고 한다.

이어서 우금치에 대한 동학군의 맹렬한 공격이 시작되었다.

우금치고개를 오르다가 밀리기를 수십차례 동학군의 시체는 겹겹이 쌓여
갔지만 방어선은 뚫릴 줄 몰랐다.

동학군은 이렇게 죽을 힘을 다해 싸웠으나 결국 패배하고 만다.

일본군이 막강한 신무기를 갖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장기적이고 유격전
형태의 전투가 아닌 정면대결을 택했기 때문이다.

1945년 8월 일본이 항복하자 장개석의 국민당군과 모택동의 공산당군
사이에 중국을 장악하기 위한 싸움이 본격적으로 벌어졌다.

미국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는 국민당군은 병력.무기.장비면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갖고 있었으나 정신력은 공산당군이 훨씬 강했다.

국민당군의 수뇌부는 심하게 부패돼 있었으며 군대의 사기는 떨어져만
갔다.

장개석은 일본이 패망했을 때 무려 2백53개사단이나 거느리고 있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전세는 국민당군에게 불리하게 되어갔다.

1948년에는 이미 중국대륙의 주요지역이 거의 공산당세력하에 들어갔고
국민당군은 실제로 이렇다 할 저항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사단이 미국식 무기와 장비를 갖고 부대채 공산진영으로
넘어갔다고 한다.

1949년 4월 21일 공산당군은 최후의 대공세를 시작한다.

이때 저항하는 국민당군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광동으로 천도했던 국민당정부는 대만으로 건너가고 10월 1일 모택동이
북경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을 선포함으로써 중국내전은 끝난다.

우금치전투에서 보다시피 아무리 군대의 정신력이 강해도 그를 뒷받침하는
훌륭한 전략과 좋은 무기가 없으면 희생이 매우 클 뿐더러 결국 지고말
가능성이 많다.

반면에 국민당군의 이야기는 군대의 정신이 썩었을 때 좋은 무기와 장비가
얼마나 무력하고 허망하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따라서 위의 두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간단하다.

전쟁에서 이기려면 강한 정신력과 전략.무기.장비 등의 전문성을 모두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한 쪽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이 원리는 현대의 마케팅전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마케팅에서의 정신력은 고객을 진정으로 위하는 마음가짐과 자세가 얼마나
몸에 배어 있느냐를 나타내는 고객지향정신이다.

흔히 기업의 조직이 커지고 세분화될 수록 임직원들의 상당수는 업무의
성질상 고객과 직접 접촉하는 일이 드물다.

그러나 이렇게 조직과 고객간의 거리가 멀어질 수록 조직구성원들은
고객의 욕구를 잘 모르게 되고 따라서 고객을 위하는 마음가짐의 중요성도
덜 느끼게 된다.

이러한 경향은 정부나 대기업같은 큰 조직체에서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부서이기주의로 말미암아 더 심해질 수 있다.

물론 대기업은 고객의 욕구를 전문적으로 조사하여 파악함으로써 회사와
고객들과의 거리를 좁히려고 한다.

그러나 전문적으로 시장조사를 하고 마케팅분석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직접 고객들과 맞부딪치고 그들의 욕구-필요를 피부로 느끼는 것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그래서 해외의 많은 회사들은 연구개발.생산.재무쪽의 직원들을 정기적으로
판매현장에 내보내고 엔지니어.생산직사원들을 고객에게 보낸다.

고객의 의견을 직접 듣고 현장에서 그들의 문제점을 손수 파악하게 하기
위함이다.

이처럼 뛰어난 고객지향정신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춰가고 있는
회사는 여기저기 많다.

그 한 예가 렌쯔사다.

이 회사는 복사기와 휠체어 등에 들어가는 부품을 생산하는 독일회사다.

이 회사의 임원인 지커씨가 싱가포르의 고객을 방문했을 때 그는 자기
회사에서 판매한 기계를 현지기술자가 수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즉석에서 양복을 벗고 소매를 걷어 올린 다음 두 시간에 걸쳐 문제를
깨끗이 해결해주었다.

싱가포르의 고객이 어떤 인상을 받았는가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고객지향정신과 함께 요구되는게 마케팅의 전문성이다.

마케팅에서의 전문성은 마케팅전락.시장세분화.제품.유통.가격.커뮤니
케이션 등 마케팅의 모든 부문을 전문적으로 관리하고 통합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마케팅은 사회과학의 어느 분야보다도 빨리 발전하고 있고 새롭고 실질
적인 지식-기법이 계속 축적되고 있다.

그래서 기업은 마케팅분야에서의 전문성을 높이는 노력도 정신재무장
만큼이나 중요하다.

결국 무한경쟁시대의 마케팅전쟁에서 승리하고 싶어하는 기업인들이
과거의 전쟁사에서 배워야 하는 점은 아래의 단 한마디로 요약될 수 있다.

"모든 것을 고객의 눈으로 보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고객지향정신과
그러한 고객지향정신을 전문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마케팅전문성을
고루 갖추는 것, 그것이 가장 확실하게 시장에서 성공하는 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