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제천시에서 강원도쪽으로 도경계를 넘어 승용차로 15분정도를
달리면 영월군에 쌍룡마을이 나타난다.

왜가리떼가 둥지를 틀고있는 푸른 솔숲에 둘린 마을모습이 평화스럽다.

쌍룡양회 영월공장이 바로 이곳에 자리잡고있다.

이 첩첩산골에서 옹기종기 모여있는 민가, 국민학교, 공장건물, 사원
아파트가 묘한 대조를 이루며 눈에 다가온다.

이 회사 이름의 연원이 된 쌍룡리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있다.

공장 뒷산 쌍용굴에 얽힌 얘기다.

아랫마을 칠보총각은 부자집에 일하러왔다가 주인집 딸과 사랑에 빠진다.

주인은 칠보와 딸을 뒷산 쌍굴에 각각 가두고 헤어지라고 협박한다.

두 연인은 굶어죽어 청룡과 황룡이 된다.

승천에 필요한 여의주는 하나뿐.

둘은 여의주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정답게 하늘로 오른다는 내용이다.

노조창립이후 31년 무분규기록을 갖고있는 이 회사 노사관계는 쌍용굴의
전설을 떠오르게 하는 대목이 많다.

김원황노조위원장은 "각자의 이익을 고집하면 패자만 있지만 서로에게
도움되고자 노력하면 양쪽이 승자가 된다는 인식이 노사 모두에 깔려있다"
고 설명한다.

노조는 회사가 설립된지 2년후인 지난 64년 1백80명의 조합원으로
출범했다.

고김성곤회장은 당시 금성방직 충주비료등 각사에서 모인 사원을 단결
시키기위해 노조설립에 긍정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밥 굶는 직원이 있으면 노조가 책임져라"고 노조사무실을 방문할
때마다 강조했다고 한다.

이 회사 노조는 현재 전국 29개지부에 2천3백여 조합원을 두고있는
대규모 조직으로 성장했다.

87년엔 무분규 기록이 깨질 뻔한 일도 있었다.

젊은 노조원들이 사회분위기에 동요됐기 때문이다.

"창원 분공장은 당시 연대파업에 동참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근노조로
부터 화염병 세레를 받은 적도 있다"고 김위원장은 회고한다.

선배 노조간부들이 나서서 후배들을 설득해 이 회사는 87년의 "유행병"
을 앓지 않았다.

선배들의 애사심이 후배들의 혈기를 압도한 셈이다.

대립이란 구도를 전혀 찾아보기 어려운 이 회사 노사관계의 비결은
제도적으로 잘 정비된 대화창구가 많다는데 있다.

우덕창사장은 "노사간에 가장 주요한 것은 신뢰이다.

신뢰가 있으면 회사가 나서서 근로조건을 개선하게 되고 노조가 앞장서
생산성을 높이려 한다"고 강조한다.

이회사는 지난 68년 노사협의회를 설치해 과별 공장별로 현장의 애로를
청취하고 개선하는 창구로 활용하고 있다.

노사협의회법이 80년 제정된 사실을 떠올리면 이 회사의 노사관계의
선진성은 더욱 부각된다.

본사의 경우 위원장을 비롯한 노조대표 10명과 사장을 비롯한 사용자
대표 10명등 모두 20명으로 구성돼 매분기별로 회의를 개최하고 있다.

사측은 회사의 경영실적과 경영여건변화를 보고하고 노조는 조합원들
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 토의하고 건의한다.

출근부폐지 정년연장 장기근속자우대 신원보증제폐지 등이 노사협의회
를 통해 이루어졌다.

노사협의회는 각 공장 각 부서단위로 세분돼 운영되면서 이 회사의 각종
개선운동등 소집단활동의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76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현장소집단활동은 현재 95%이상의 현장근로자
들이 참여하고 있다.

91년부터는 부.과장등 관리자계층 및 임원까지 소집단활동을 벌이고
있다.

92년에는 경영설명회를 신설,매년 전국 노조간부 1백10여명에게 회사
경영실적과 계획을 공개하고 있다.

노사협의회가 "노사는 한가족"이라는 공동체의식을 다지는 밑거름이
돼왔다는 평가이다.

영월공장장 김관형상무는 "과단위까지 노사협의회가 있기 때문에
근로자들의 고충이 현장에서 즉시 해결된다"며 "회사가 문제해결을 미루지
않으면 노사문제는 생기지 않는다"고 귀뜸해준다.

후생복지제도도 이 회사 노사관계안정요인으로 빠뜨릴 수 없다.

87년 종업원들의 주택마련을 돕기위해 회사측이 출연한 50억원으로 시작된
사내근로복지기금은 현재 국내최대규모인 2백44억원으로 늘어났다.

노사대표 각 10명씩으로 구성된 쌍용가족협의회가 운영을 맡고 있다.

전종업원들을 대상으로 주택구입 및 전세자금을 융자해주고 있다.

지난 77년에는 국내기업 최초로 자녀학자금지원제도를 마련했다.

이 회사 노사는 지난 5월12~14일 창사 33주년을 맞아 강원도 용평리조트
에서 노사화합실천대회를 가졌다.

이날 대회에서 노조측은 올해 임금인상결정을 회사측에 "백지위임"했다.

회사는 이를 수용해 5.6%임금인상을 결정했다.

지난해 매출 1조원을 돌파해 근로자들의 임금인상욕구가 높았지만 임금
인상폭을 놓고 2~3개월씩 소모전을 벌일수 없다는 인식을 노사 모두가
함께 갖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노동조합도 이제 세계기업으로 회사를 성장시키는 방향으로 혁신해야
합니다.

한차원 높은 노사문화정착에 노조가 앞장서 나설 때 회사가 그 과실을
충분히 돌려주리라고 믿습니다" 김위원장의 말에서 이회사 노사관계는
함께 힘을 합쳐 승천하는 청룡과 황룡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영월=권녕설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