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7년11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 채용돼 5년반정도 일하다 올초
서강대 화학공학과로 자리를 옮긴 이희우교수(38)는 연구소 근무중 참으로
어이없는 일을 겪었다고 밝힌다.

어느날 갑자기 자신이 연구실에서 사용한 시외전화의 영수증이 필요하게
됐다. 행정부서에서 이를 요구해온 것이다. 연구를 위해 시외전화를
걸었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전화사용이 뜸한 심야에 전화교환실을 찾아가
교환전화를 잠시 끊고 통화파일을 뒤져서 확인증명을 받을수 있었다.

이교수가 이처럼 한밤중에 전화사용증명을 받으려고 소동을 벌인 것은
영수증이 없으면 감사의 지적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은 연구소 전체적으로 흔히 벌어지는 일이다. 전화뿐만 아니라
연필 한자루를 사더라도 영수증이 첨부되어야 한다. 영수증을 모으기 위해
전체 연구기관이 끙끙댄다. 이같은 일은 연구기관의 성격을 무시한
융통성없는 정부의 감사에서 비롯된 것이다.

연구란 연구시작 날짜와 예산이 집행되는 시간에 갭이 생길수 있다.
연구원들은 때로 그 갭을 메우고 연구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다음연구에
필요한 시설이나 장비를 기존 프로젝트나 다른 프로젝트의 연구비를 전용해
구입하는 수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선의의 행동은 어느해 감사에서 크게
지적됐다. 그로부터 영수증을 꼭 첨부해 달라는 요구가 이어졌다.

그렇게되니 연구원들 사이에서 지적을 면키 위해 그 연구에 필요한
시약이나 기계등을 도입할때 예산집행을 무조건 기다렸다 시행하는 풍조가
생겨났다. 해외로부터의 기계도입에 걸리는 3~4개월정도를 거의 놀면서
보내는 한심한 일도 벌어지게 됐다.

또 계정간의 비용이전에는 한치의 융통성도 없다. 인건비로 책정된
계정에서 재료비를 써도 당장 큰 일이 나게 된다. 보사부에서 받은
프로젝트비용으로 과기처프로젝트를 위한 출장에 쓰게되면 그야말로 난리가
나는 상황으로 전개된다. 같은 정부내의 부처끼리인데도 말이다.

"연구는 흐름을 타는 것입니다. 이런 사소한 일로 지적을 받으면
연구원들은 몸을 사리게되고 융통성이라고는 전혀 없이 철저하게 제
계정에서 제 비용만 쓰고 꼬박꼬박 영수증을 붙이지요. 이러다보니 연구가
계속성을 잃게되고 단절현상까지 빚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화학연구소에서
성균관대로 옮긴 지옥표교수(약대)의 말이다.

특히 이같은 경직된 분위기는 보고서작성을 위한 형식적인 연구로
흐르게하거나 의욕을 갖던 연구도 간단한 실험으로 그치고말게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분석이다.

이희우교수는 "다른 기관의 감사방식을 연구소에 적용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못하다"고 말한다. 과기처산하 연구소의 감사는 감사원에서
할것이 아니라 연구소의 사정을 아는 과기처가 맡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이다.

또다른 연구원출신 교수는 "광복이후 연구기관이 비리등으로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었는가"라고 물으면서 자율적이고 융통성있는 연구분위기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윤진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