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민주당정부가 종합소득세를 해체하고 3단계누진 분류소득세로
개편하는 안은 난산끝에 국회에 제출됐다.

이 안이 국회재무위원회에 회부되자 여기에서도 역시 같은 의견이 나왔다.

종합소득세를 해체하고 누진율을 줄이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나로서는 현실을 외면한 원론적 비판이라 별로 귀담아
듣고싶지 않았다. 그 당시 영국에서는 누진적소비세가 학계에서 활발히
논의되고 있었다. 미국에서도 거래세에 대한 연구가 학계의 주목을 끌고
있었다. 우리도 세원파악이 어려운 누진적소득세를 누진적소비세로
대체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요,순리에 맞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물품세를 대대적으로 손질했다. 물품세의 과세품목을 대폭
확대하고 사치도를 고려해 차등세율을 적용하는 물품세법안을
마련,소득세법안과 같이 국회에 제출한 것이다. 그뿐아니라 관세도 그
과세품목을 대폭 확대,국내산업을 보호한다는 입장에서 역시 차등세율을
적용하는 법안이 마련되어 멀지않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었다.

정부가 책임지고 세율을 인하하겠다는데 국회가 반대하고 나설 이유가
없지않은가. 그것도 미국과 같이 세법개정의 제안권을 국회가 가지고
있다면 모르겠다. 미국의 대통령은 세법에 관한한 제정이나 개정을
권고하는 권한밖에 없다. 설사 대통령의 권고를 받아들인다 해도 그
발의는 오로지 국회의원만이 할수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정부만이 그 발의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정부가
세율을 올리겠다고 하면 또 모르겠다. 내리겠다는데 한낱 원론적인 공식을
앞세워 반대할수 있느냐고 반론을 제기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국회의원의 체면도 살려주어야 하기때문에 그럴수는 없었다. 나의 성실한
태도와 이재형의원의 도움도 있어 문제의 분류소득세법안은 어렵게 국회를
통과하기에 이른것이다.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거쳐 3단계누진의 소득세법안이 법으로 확정됐다.
그동안 시대를 역행한다는 온갖 비난에도 불구하고 세원의 누락을
원천적으로 봉쇄해야한다는 나의 굳은 소신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법안이 마침내 법으로 확정되어 61년부터 실시하게 되었으니 참으로
감격적이었다. 그러나 5.16이 일어나는 바람에 그꿈은 깨지고 말았다.
불과 1년밖에 실시하지 못하고 변신한 것이다. 참으로 섭섭했으며 못내
아쉬움을 달랠길이 없다.

단명에 그친 3단계누진의 분류소득세는 이승을 떠나면서도 그혼백은
황천을 넘지못하고 구천을 헤맸던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렇게 20년
가까이 구천을 헤매다가 그 분신이 드디어 미국에서 나타났으니 말이다.

레이건대통령이 취임하자 완전한 분류소득세는 아니지만 역시
3단계누진소득세로 바꾸고 말았다. 그래서 최고세율이 30%에 그쳤다.
비록 단명에 그첬지만 61년 한국의 소득세 최고세율이 27%였던것을
생각해보면 결코 우연의 일치라고만 할수도 없다.

내가 미국에 있던 55년에 소득세중 과세누락이 5%정도라고 했다.
그대부분이 배당이자소득에서 탈루된다는 것이었다. 레이건대통령취임
당시의 상황은 알길이 없으나 과세의 탈루가 15%정도는 되지않았나 생각
한다. 물론 나의 추측에 불과하다.

이탈리아와 같이 지하경제가 50%정도는 아니라해도 50년대와 달라서
미국의 납세기강이 많이 해이해진것같다. 특히 배당이자소득에서
과세누락이 많아 45%나 됐다고 한다. 그당시 소득세의 최고세율이 60%를
넘었지만 실제로 적용되는 이른바 유효최고세율은 30%밖에 안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도 최고세율을 30%로 하는 3단계누진소득세로
개편했던 것이다.

미국의 소득세개편작업은 재무부차관의 진두지휘아래 실무진에 의해
이루어진것 같다. 정치가는 선거구민의 인기를 앞세우고 학자는 현실에
어두우면서 이상만을 좇기 때문에 이들의 관여를 완전 배제한것 같다.
따라서 세무행정면에서는 우선 과세누락을 최소화할수 있으니 과세의
공평을 위하여 현실적으로 타당한 차선책임에는 틀림 없다.

그러나 국회의원의 관심은 세율인하에 있는것이 아니다. 세율은 인상하되
그대신 감면폭을 넓혀주어야 선거구민에 생색이 난다. 미국에서도
3단계누진세의 소득세법안을 야당인 민주당이 반대할 기세여서
레이건대통령은 남부민주당과 합세,국회통과를 강행했다는 것이다.

그후 3단계누진세가 10년이 넘도록 계속 유지돼오고 있었으나
클린턴대통령이 소득세의 인상을 선거공약의 쟁점으로 삼아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클린턴의 대통령취임과 더불어 곧 세율인상이 있을것으로
예상했는데 소득세의 세율구조는 그대로 두고 오히려 전기가스세를
신설한다는 것에 그쳤다.

한국에서는 불과 1년의 단명으로 끝났으나 미국에서는 3단계누진소득세가
장수를 누려 혹 조세발전사에 새로운 이정표가 되지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