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죽제조업자와 세금징수자사이의 유일한 차이는 가죽제조업자가 가죽을
다 쓰지 않고 남기는데 있다는 옛말이 있다. 무엇을 남기는것,즉
생산하는데에 발전이 있다. 남기지 않는것은 정체와 퇴보이다. 이래서
세금의 크기에 따르는 정부규모와 성장률간에는 부의 상관관계가 있다는
말까지 있다. 실제로 일본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가장 작은 정부로서
가장높은 성장률을 나타냈다. 그러면서도 정부의 경제발전역할은 가장
컸다.

그렇다고 세금을 사시적으로만 보려는것은 아니다. 세금은 인류의 가장큰
발명품인 국가를 지탱하는 기본이다. 죽음과 세금처럼 확실한것은 없다는
말이 있지만 그런 익살적 의미와는 다르게 세금은 확실히 부과되고 확실히
납부되어야 한다. 준법해야하는 국민의 의무이다. 조세의 크기와는 달리
세금자체에는 이론이 있을수 없다.

그런데 준조세는 결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것은 조세의 탈을 쓰고
칼을 휘두르는 경우가 많다. 조세법정주의의 뒷마당에 있는 세무소다.
가죽을 남기는 일이 적고,가죽만드는 일을 결과적으로 저해한다. 물론
준조세중에는 기업들이 번 돈을 사회에 기여하기 위한 갸륵한 뜻이 담긴
것도 있다. 문제는 비자발성이 40%를 넘는데 있다. 하기는 자발성
준조세가 과연 모두 자발적인지 조차 의문스럽긴 하다.

민주화된 국가에서 경제주체에 대한 "강제"가 이토록 많을수 있는 것인지
당혹스럽다. 경제분야에선 민주화가 허울뿐인 것인가. 아직도 경제는
밟으면 잠자코 밟혀야하는 사농공상시대에 살고 있는 것인가.

상공부가 국회에 낸 자료를 보면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는 중소기업들이
연간 평균 5백66만원의 준조세를 내고 있으며 이중 20%가 정당후원금이라고
한다. 많은 중소기업들이 도산위기에 몰려 있고 실제로 도산하고 있는
판에 따뜻하게 격려는 못해줄 망정 그들에게 손을 벌리고 있는 것이 정치란
말인가. 결국은 지금 국정감사를 하고 있는 상당수 의원들이 준조세의
집수자라는 사실에 우리 국정의 착잡함이 있다. 또 하나의 비합법적
"국세청"이 크게 자리잡고 있다는데 우리기업들의 족 가 있다.

준조세는 기업규모가 클수록 그 증가율도 높아진다. 올 상반기중
12월말결산 4백3개 상장사의 기부금규모는 1천49억원으로 작년 동기보다
50.6%가 늘어났다. 50대기업만의 경우는 74.2%나 증가했다. 이는 그렇지
않기를 믿지만,정치권의 대기업두들기기와 정치자금사이에 모종 관계가
있는것 같은 의혹마저 일게한다. 게다가 정치자금갹출은 나타난
숫자보다도 안나타난 숫자가 훨씬 크리라는 것이 일반적인 추측이다.

정부는 6공초기 2백12종에 달하는 준조세중 19종만 남기고 모두 폐지키로
하는 준조세정리방안을 밝혔었다. 그후 잠시 뜸하다가 정책의지를 비웃듯
다시 크게 늘어났다. 늘어나면 축소하겠다고 밝히고,또 늘어나면 또
폐지하겠다고 천명하고."또 또"를 숨바꼭질하듯 거듭했다. 정책의지도
현실적 각급 권세앞에선 이처럼 허무하게 무너지는가 하는 공허감마저
느끼게 된다.

준조세는 다른 나라에도 있다. 이것을 몽땅 죄악시만 할 현실은 아니다.
남을 돕는 따뜻한 마음을 누가 막을 것인가. 이런 기부금이 미국은 기업
세제이익의 1 1.5%를 차지한다. 일본의 경우는 0.96%,경제규모가 비교할수
없이 작은 우리는 3.14%에 이르는 것이,그것도 따스한 마음이 아니라
무서운 마음으로 내는 것이 국가적 위선이다. 일부공산품은 각종 세금과
준조세성 부담금이 원가의 50%까지 이른다고 하는데 이에 더하여
준조세까지 더 많이 강요받게 되면 이게 무슨 경쟁력 강화를 외치는 나라의
행태인가.

"과세와 대의는 신이 결합한 것으로 분리할수 없다"는 말은
근대국가성립때에 나온 말이다. 대의를 안거친 준조세가더욱 늘어난다는
것은 광의의 각급 권세가들이 이 나라를 어떤 수준으로 몰고가려는 것인지
요즘의 정치행태처럼 암담하기만 하다. 하나의 정권세월을 다 흘려
보내면서도 이를 못고치고 있는 현실에서 준렬한 자성에 빠지게 한다.

대선이 다가온다. 파쟁은 더 혼미하다. 준조세가 기승부릴수 있는
소지다. 노대통령의 뜻을 이어 발족한 중립내각은 이를 척결하여 6공의
출범초 약속과 깨끗한 정치를 함께 실현해야 한다.

그것이 가죽을 많이 남기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