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시인' 김용택 "나무는 정면이 없잖아요, 모두가 정면" [책마을 사람들]
"나무는 경계가 없어서
자기에게 모든 것들을
받아들여 새로운 정부를 세운다" ('새들의 시')

'섬진강 시인'으로 알려진 김용택(74·사진) 시인이 최근 14번째 시집 <모두가 첫날처럼>으로 돌아왔다. 22일 그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나무는 '정면'이 없다, 어느 방향에서 바라보든 곧 아름다운 정면이 된다"며 "오로지 '하나의 정답'만을 강요하는 현대 사회를 돌아보게 한다"고 설명했다.

1948년 전북 임실에서 태어난 그는 1982년 연작시 <섬진강>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섬진강을 배경으로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 속 삶의 모습을 절제된 언어로 노래하기 시작했다. 이후 '섬진강 시인'이란 수식어와 함께 한국 서정시를 대표하는 이름으로 자리매김했다. 지금도 고향 진메마을에서 집필을 이어가고 있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 "나무는 정면이 없잖아요, 모두가 정면" [책마을 사람들]
55편의 시를 담아 2년 만에 출간한 시집에서는 정치와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곳곳에 불어넣었다.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자 오히려 세상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고. 그는 "팬데믹 때 집에서 세계사·미술사·철학사 등 책을 두루 읽으며 세상을 바라보는 나름의 철학이 형성됐다"고 말했다.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은 수록작 '우리들의 꽃밭'에서 드러난다. 시에선 "그렇지 않아도 서로 거리가 먼 사람들이 사회적인 거리를 두고" 있다. 이어 화자는 "서로 안 보일 때까지" 거리가 멀어져서 "서로 무관하게 될까" 걱정한다. 이 모든 문제는 "자본의 간교한 습성"과 "제도"를 통해 심화한다.

"지난 2년 동안 팬데믹이 우리 사회의 양극화 문제를 심화시켰다. 잘 사는 사람, 권력을 많이 가진 사람과 경제적·정치적으로 소외당하는 사람 사이의 간극이 커졌다. 이러다가 양 끝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를 '무관하다'고 여길까 봐 두려워졌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 "나무는 정면이 없잖아요, 모두가 정면" [책마을 사람들]
어떻게 해야 할까. '새들의 시'에 그 해답이 숨어 있다. 시인은 현대 사회가 나무로부터 배울 점이 있다고 조언한다. 그는 "우리가 힘든 이유는 보수와 진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등 모든 갈등이 하나의 정답을 강요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나무처럼 정면이 다양해야 인간의 아름다움을 그 속에서 찾고 가꿀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사회 속 시인의 역할에 대한 제언도 이어갔다. 수록작 '시인'에서 시인은 "나비의 바람"으로 "정치를 기술"한다. 김 시인은 "어떤 권력도 이용하지 않고 자기 바람으로 날아가는 나비의 모습을 관찰했다"며 "시도 마찬가지로 권력에 기대기보다 자기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자연을 벗삼아 살아가는 시인에게는 작시(作詩)의 과정 역시 인위적이지 않다. 7~8년 전부터 쓰기 시작한 '새들의 시'도 최근 들어 우연히 나무에 앉은 새를 바라보다가 제목을 완성했다고. "'어떤 시를 써야겠다' 생각하고 시를 쓰지 않는다. 시가 나에게 오는 것이지, 내가 시를 기다리지 않는다. 이듬해 봄 열매를 맺을 살구나무가 겨울을 나듯, 그 자리에서 묵묵히, 하지만 부단히 노력할 뿐이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