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와 판소리의 만남…국립창극단 신작 '베니스의 상인들'
셰익스피어가 판소리와 만나면 어떤 공연이 될까. 셰익스피어의 대표 희극 '베니스의 상인'이 판소리와 현대적 감각이 어우러진 창극으로 다시 태어난다.

국립창극단은 다음달 8~11일 신작 '베니스의 상인들'을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초연한다고 밝혔다. 셰익스피어의 희극을 원작으로 만든 창극이다. 베니스의 젊은 상인 안토니오가 피도 눈물도 없는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으로부터 돈을 빌리고 갚을 수 없는 처지에 놓이자, 샤일록이 계약대로 안토니오의 가슴살 1파운드를 도려내겠다고 나서면서 재판이 열리는 내용이다.

이번 공연은 400년 전 쓰인 고전에 현대적 감수성을 부여하기 위해 대본을 각색했다. 원작에 담긴 종교적·인종적 차별 요소를 과감하게 걷어냈다.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은 선박회사를 운영하는 거대 자본가로 바꾸고, 안토니오 역시 소상공인들의 조합을 대표하는 리더로 설정했다.

극본을 쓴 김은성 작가는 "원작을 다시 읽어보니 샤일록은 당시 사회에서 차별받던 약자처럼 느껴졌다"며 "이번 공연에선 샤일록을 전형적인 악인으로 묘사해 안토니오와의 대립 구도를 더욱 선명하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작품은 샤일록-안토니오의 대립과 더불어 포샤와 바사니오의 낭만적 사랑 이야기까지 크게 두 축으로 이뤄졌다. 이성열 연출가는 "냉혹한 법이 지배하는 베니스 공간과, 연인들이 사랑을 확인하는 벨몬트 공간을 구분해 서로 대비시키는 방향으로 무대와 의상 등을 꾸밀 예정"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주도적인 여성 캐릭터를 설정하고 현대 법정과 같이 법관과 변호사의 역할을 세분화하는 등 현대적 요소를 첨가했다.
셰익스피어와 판소리의 만남…국립창극단 신작 '베니스의 상인들'
이번 작품의 가장 독특한 요소 중 하나는 음악이다. 판소리 원형을 살리되 대중음악적 코드를 가미한 62곡을 부른다. 국립창극단 역대 작품 중 최다 곡이다. 원일 작곡가는 "한승석 작창가가 판소리적 특성을 담아 작창한 곡에 대중성을 부여하는 작업을 했다"며 "창극에서 이례적으로 헤비메탈이나 팝, 전자음악적인 요소를 사용했다"고 말했다.

캐스팅도 화려하다. 주역 안토니오와 샤일록 역은 각각 국립창극단의 대표 스타 유태평양과 김준수가 연기한다. 벨몬트의 주인이자 지혜로운 여인 포샤는 민은경, 사랑에 빠진 젊은 청년 바사니오는 김수인이 연기한다. 그밖에 국립창극단 전 단원을 포함한 총 48명의 출연진이 참여할 예정이다.

배우 유태평양은 "창극과 희극이 접목되는 건 흔치 않은 경우"라며 "정의로우면서도 꿈과 희망을 품고 있는 캐릭터를 연기하겠다"고 말했다. 김준수는 "원작에서 샤일록은 60대지만 연령대를 좀 낮춰서 표현하려고 한다"며 "노래할 때 가사의 맛을 살리는 데 초점을 맞춰 연습 중"이라고 말했다.

웃음과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희극이다. 이성열 연출가는 "작품 기획 단계에서부터 코로나19 등으로 그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은 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작품을 만들어보고자 했다"며 "현실을 가로막고 있는 벽과 장애물을 젊은이의 사랑과 패기, 시민들과의 연대 등으로 극복해가는 긍정적 메시지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