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철의 글로벌 북 트렌드] 11남매의 기억으로 돌아본 '1960년대 독일의 농촌'
1960년대 세계 곳곳에서는 산업화와 도시화가 거의 동시에 진행됐다. 시대의 전환은 생각보다 급격하게 이뤄졌지만 사람들은 변화에 빠르게 적응해갔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60여 년 전, 그러니까 소위 ‘베이비붐 세대’라고 일컬어지는 세대가 세상의 주역으로 등장할 무렵, 그 시절 세상의 모습은 과연 어땠을까?

그때는 요즘 젊은 세대가 감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낙후된 시대였다. 대부분의 사람이 농촌에서 농사를 지으며 생활했고, 형제자매가 보통 대여섯 명이었고, 전기나 상하수도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허름한 환경에서 생활해야 했다.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야 했던 사람들에게 그 시대는 과연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

지난 5월 초 독일에 출간되며 인기를 끌고 있는 <한 농장과 열한 명의 형제자매(Ein Hof und elf Geschwister)>는 아주 특별한 역사책이면서 한 가족의 일상을 담은 에세이다. 농촌 시대와 전원생활의 종말을 드라마틱하게 소개하는 이 책은 벌써 ‘2023년 독일 논픽션상(Deutsche Sachbuchpreis 2023)’의 가장 유력한 후보로 언급되고 있으며, 주요 서점의 베스트셀러 상위권 목록에 올라가 있다.
[홍순철의 글로벌 북 트렌드] 11남매의 기억으로 돌아본 '1960년대 독일의 농촌'
가축 거래, 자급자족 그리고 품앗이와 상호부조 문화가 지배하던 농촌의 자랑스러운 전통이 빠른 속도로 소리 없이 사라져버린 것에 대한 진한 아쉬움이 드러나 있다. 시끌벅적한 농장이 사라진 것이 사람과 마을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려준다. 지금 세대에는 낯선, 하지만 그 당시를 살아낸 세대에는 너무나 그리운 삶의 방식이 소개된다.

저자 에발트 프리는 독일 튀빙겐대 현대사 교수다. 1962년 뮌스터란트(Mnsterland)라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열한 명의 자녀 중 아홉째로 태어난 그는 자신이 어린 시절 뛰놀던 농가를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그리고 사라져버린 한 시대에 대한 추억을 간직하기 위해, 다른 열 명의 형제자매에게 각자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요청했다. 1944년에서 1969년 사이에 태어난 열한 명의 남매는 각자 소중한 기억을 하나씩 소환했고, 그렇게 잊힌 한 시대에 생명을 불어넣는 특별한 책이 탄생할 수 있었다.

급격한 시대의 변화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경로를 뒤흔들기 마련이다. 책에 소개된 열한 명의 남매에게도 그랬다. 자녀 교육에 욕심이 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장남을 제외하고는 모두 시골 마을을 떠났고 그들은 각자 완전히 다른 길을 걷게 됐다. 교사, 교수, 약사 그리고 기술자가 된 형제자매도 있었지만 누군가는 그곳에 남아 낡은 농장을 그리고 늙은 부모를 돌봐야 했다.

존경받고 부유했던 농부들은 왜 갑자기 가난해지고 낙후된 계급으로 전락하고 말았는가. 도시화와 교육의 확장으로 무엇이 사라졌는가. 급격한 사회 변화를 통해 무엇을 얻었고 또 무엇을 잃었는가. 가톨릭교회는 왜 사람들을 농촌에서 몰아내려고 했는가. 도시화 과정에서 여성 노동은 어떤 변화를 겪었는가.

[홍순철의 글로벌 북 트렌드] 11남매의 기억으로 돌아본 '1960년대 독일의 농촌'
저자는 부모 세대의 유산에서 시작해 형제자매가 겪은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이야기를 복원해내면서 흐릿해져 버린 한 시대에 다시 색채를 더한다. 가정의 달을 맞아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는, 다사다난했던 한 가족의 일대기이면서 농촌사회가 붕괴하던 대격변의 시대에 대한 초상화다.

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북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