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밉지는 않은데 왠지 불편하네…" 너무 현실적이라 잔인한 외로움
주디스 헌은 40대 초반의 미혼 여성이다. 이기적이고 노망든 이모를 보살피느라 청춘을 보내고, 이모가 세상을 떠난 이제야 자기 삶을 살려고 한다. 하지만 변변한 직업도, 친구도, 외모도 갖지 못한 그는 외롭기만 하다.

장편소설 <주디스 헌의 외로운 열정>은 ‘영원한 외로움’에 대한 비극적인 이야기다.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부커상 최종 후보에 세 차례 오른 북아일랜드 출신인 캐나다 소설가 브라이언 무어(1921~1999)가 1955년 썼다. 그의 데뷔작이자 대표작인 이 소설이 최근 국내 초역으로 출간됐다.

소설의 배경은 1950년대 북아일랜드 수도인 벨파스트. 이모의 장례를 치르고 주디스가 새로운 하숙집으로 이사 가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하숙집 주인의 오빠이자 미국에서 갓 돌아온 중년 남성 제임스 매든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거기엔 서로 간의 오해가 있었다. 주디스는 호텔 입구에서 자동차 문을 열어주는 ‘도어맨’ 매든을 호텔 사업가로 착각했다. 매든은 주디스가 착용한 장신구만 보고 부자라고 잘못 생각했다. 주디스는 매든과의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지만 냉혹한 현실 앞에 좌절하고 만다.

별것 아닌 이야기지만 작가는 생생한 캐릭터 구축과 세밀한 심리 묘사로 소설을 명작의 반열에 올려놓는다. 주디스는 인간적이고 착하지만 밉상 같은 면이 있다. 곧잘 공상에 빠지고 거의 알코올 중독자다. 시기와 증오를 억누르지 못하고 터뜨릴 때가 있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주디스를 미워하는 건 아니다. 다만 아무도 사랑하지 않을 뿐이다. 주디스도 이해되고, 주변 인물도 이해되기에 씁쓸함이 가중된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이렇게 완벽히 표현된 캐릭터, 혹은 이렇게 고통스러우리만치 현실적인 캐릭터는 현대 소설에서 거의 만나 볼 수 없다”고 평했다.

작가는 여러 장치를 통해 씁쓸함을 증폭시킨다. 특히 전지적 시점과 인물들의 내면 독백을 오가는 서술이 인상적이다. 이런 서술 방식은 편견으로 가득한 인물들의 내면과 잔인하리만치 차가운 현실을 강렬하게 대비시킨다. 주디스가 진실한 친구라고 생각했던 오닐 가족의 집을 방문했을 때가 그런 예다. 오닐 가족은 주디스를 뒤에서 조롱하며 이번엔 누가 그를 상대할 의무를 질지 논쟁한다. 물론 주디스는 그들의 속마음을 모른다.

외로움과 고립, 희망과 좌절을 다루는 이 소설은 시대를 초월해 우리에게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무고하지만 불편한 자를 어떻게 환대할 것인가. <바다>로 부커상을 받은 존 밴빌은 “1955년에 처음 등장했을 때처럼 여전히 신선하고 가슴 아프게 읽힌다”고 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