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시립도서관 꽃심의 ‘우주로1216’  전주시·도서문화재단 씨앗 제공
전주시립도서관 꽃심의 ‘우주로1216’ 전주시·도서문화재단 씨앗 제공
이곳은 ‘노 키즈 존(no kids zone)’이 아닙니다. 어른은 출입 금지, 즉 ‘노 어덜트 존(no adult zone)’입니다.

전주시립도서관 꽃심 3층에 자리한 ‘우주로1216’은 12~16세 청소년이 주인인 공간이에요. 톡톡(소통), 쿵쿵(무대), 슥슥(창작), 곰곰(사색) 네 가지 테마로 꾸려진 청소년 전용 도서관입니다. 제각기 자신만의 우주를 창조 중인 청소년들이 이곳에서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어른들의 간섭 없이요.

제아무리 높은 분이라고 해도 어른은 함부로 못 들어가요. 이곳에 유일하게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어른은 사서 선생님뿐입니다. 사서 업무공간은 ‘지구인 출몰지역’이라고 표시해놨어요. 멋진 공간마다 ‘노 키즈 존’을 써 붙여 놓은 어른들을 향한 통쾌한 반격 같죠?

우주로1216이 궁금한 어른들에게, 구경할 방법을 살짝 알려드릴게요. 바로 전주 도서관 여행에 참여하는 겁니다. 전주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도서관 특화 여행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거든요. 전주시립도서관 홈페이지에서 예약하면 전주의 이색 도서관들을 해설가와 함께 둘러볼 수 있습니다. 단, 코스마다 방문하는 도서관은 다릅니다. 매주 토요일 3회, 매월 마지막주 금요일 1회 운영합니다. 계절에 따라 코스가 달라진다는 점도 기억해주세요.
학산숲속시집도서관
학산숲속시집도서관
얼마 전 우주로1216이 포함된 유일한 코스, ‘햇살책품’ 여행을 다녀왔어요. 오전 9시20분부터 오후 1시까지 전주시립도서관 꽃심을 비롯해 학산숲속시집도서관, 동문헌책도서관을 둘러보는 반일짜리 여정이었습니다.

학산 수변공원에 자리 잡은 학산숲속시집도서관은 시집만 모아놓은 시 전문 도서관입니다. 나뭇가지를 연상시키는 로고는 잘 살펴보면 ‘시집(ㅅㅣㅈㅣㅂ)’이란 글자예요. 숲속 자그만 오두막 같지만, 나름 3층 구조랍니다. 3층 다락방이 제일 인기가 좋아요. 털썩 앉아 시집을 읽다 고개를 들면 창문 가득 신록이 담겨 있죠. 이곳의 명예관장은 ‘섬진강 시인’ 김용택 시인. 김사인 시인 등 지역 예술가와 함께하는 낭독 모임도 열린답니다.
동문헌책도서관
동문헌책도서관
동문헌책도서관은 전주 한옥마을 인근 동문거리를 지키고 서 있는 도서관입니다. 1970~1980년대만 해도 이곳은 헌책방 골목으로 통했어요. 온라인 서점의 등장 등으로 지금은 단 두 곳만 남았죠. 지난해 말 개관한 동문헌책도서관은 이런 추억을 품은 채 새로운 추억을 쌓아가는 공간이에요. 요새 도서관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곳은 지하 1층 만화책 서가. 마치 캠핑장처럼 꾸며진 공간에서 <캔디캔디> 같은 추억의 만화부터 <신과 함께> 등 웹툰 기반의 종이책도 실컷 읽을 수 있어요. 계단 밑에 신발 벗고 배 깔고 누워 만화책을 볼 수 있는 ‘비밀 아지트’는 아이들이 한 번 들어가면 나올 줄을 모른대요. 1층에는 옛 영화 DVD를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 있고요. 1970년대 등 시대별 베스트셀러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답니다.

이 밖에도 전주에는 이색 도서관이 많아요. 기차를 타고 전주역에 내리면 여행책과 잡지 등을 모아놓은 첫마중길여행자도서관이 여행자를 맞이합니다. 덕진구 팔복동 이팝나무그림책도서관은 폐공장에서 그림책 전문 도서관으로 재탄생했죠. 도서관 주변은 5월 초면 하얀 이팝나무 꽃이 흐드러집니다. 때맞춰 오는 5월 12일부터 6월 4일까지 전주국제그림책도서전이 열려요. 그림책 작가 강연, 그림책 낭독극장, 색칠체험 등의 행사가 계속 이어집니다.

올해부터는 ‘라키비움도서관문화여행’ 프로그램도 생겼어요. 전주 도서관뿐 아니라 옆 도시 완주의 삼례문화예술촌 등을 둘러봅니다. 나무공예처럼 각종 체험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어요. 전주에서는 도서관과 동네 책방이 더욱 가까운 사이예요. 전주 시립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으면 ‘책쿵’ 포인트를 주는데, 이걸 지역 서점에서 사용하면 책값을 할인받을 수 있답니다.

전주는 왜 이렇게까지 도서관에 진심인 걸까요? 전주는 과거부터 ‘한지와 기록의 고장’이었거든요. 조선시대 왕실은 <조선왕조실록>을 여러 권 만들어 서울, 성주, 충주, 전주 네 곳에 ‘백업’했죠. 임진왜란을 겪으며 전주 사고를 제외한 나머지 세 곳은 소실됐어요. 전주는 <조선왕조실록>을 유일하게 지켜낸 도시인 셈이죠. 또 <춘향전> 등 한글 고전소설의 중심지이기도 합니다.

혹시 ‘꽃심’이란 단어를 아시나요? “꽃심 하나 깊은 자리 심어 놓은 땅.” 소설가 최명희는 대하소설 <혼불>에서 전주를 이렇게 묘사했어요. 사전에는 없는 단어예요. 작품 속에서 꽃심은 추운 겨울을 버틴 뒤 봄에 새싹과 꽃잎을 틔워내는 생명력을 의미해요. 꽃의 힘, 또는 꽃의 마음인 셈이죠.

전주에는 이런 꽃심을 품은 도서관이 150여 곳이나 있습니다. 한옥의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전주한옥마을, 그곳 안에 들어선 최명희문학관, 완판본문화관도 함께 둘러본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올봄엔 전주로 책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요.

전주=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