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희 ‘숲의 기록’ (2023)
노경희 ‘숲의 기록’ (2023)
‘숲길을 걷다 멈춘 자리의 기록.’

화가 노경희(41)는 자신의 그림을 이렇게 정의한다. 그는 사계절 쉬지 않고 산에 오른다. 울창한 숲과 앙상한 가지, 흐르는 물과 반짝이는 생명을 눈에 담는다. 초록 이파리를 적시는 눈부신 햇살과 꽁꽁 언 겨울의 앙상한 풍경도 눈으로 찍는다. 단순하고 조용한 삶을 꿈꾸는 그에게 산은 때가 오면 피었다가 때가 되면 지는, 생성과 소멸의 장소다.

서울 인사동 갤러리밈 M큐브에서 전시 중인 ‘숲의 기록’은 그의 눈에 담긴 초록의 장면들로 가득하다. 12점 모두 사진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세밀하다. 미세한 빛과 나뭇가지의 모양, 잎사귀의 그림자, 흙과 돌의 이끼까지 눈앞에 그대로 재현한다. 유화로 그린 작품들이 생생한 빛을 뿜어낸다면, 파스텔로 그린 작품에선 따뜻한 질감이 묻어난다. 눈부시게 맑은 날과 안개 낀 새벽, 한겨울의 추위까지 그림 속엔 작가가 산에 올랐던 그 시간의 기록이 그대로 담겼다.

서울대 서양화과를 나와 영국 슬레이드대에서 석사를 마친 뒤 수년째 숲을 탐구해온 노 작가는 최근 시선을 하늘로 넓혔다. 이번 전시에선 두 점의 하늘 시리즈도 만날 수 있다. 흘러가는 구름의 순간을 포착해 ‘단 한 번도 같지 않았을’ 구름의 모양을 담아냈다. 전시는 오는 15일까지.

김건일 ‘Forest in Forest’ (2014)
김건일 ‘Forest in Forest’ (2014)
숲을 그리는 또 다른 작가, 김건일(50)은 서울 청담동 라루나갤러리에서 ‘퍼펙트 그린’이란 주제로 관람객을 만난다. 그의 작품 속 풍경은 실제 마주한 것이 아니라 기억과 상상 속의 숲이다. 작가는 “그리는 대상보다 그 대상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숲속을 들어가며 숲 밖에서 생각지 못한 것들을 발견하는 것처럼,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숲의 이미지들을 끄집어내 캔버스에 옮겼다. 파스텔로 그린 작품엔 동양화의 은은한 색감이, 유화로 그려낸 작품엔 또렷하고 생생한 숲의 이미지가 드러난다. 서울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그는 초록의 물감으로 캔버스를 채운 뒤 천을 이용해 지워가며 그림을 그리는 기법을 쓴다. 그 위에 다시 물감을 바르고 또 지워내 이미지를 중첩한다. 작품 탄생 과정도 마치 기억을 들춰낸 뒤 그 안에 있던 마음을 마주하는 것과 닮았다. 전시는 18일까지.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