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아 둘 딸린 헤픈 이혼녀를"…'공공의 적' 된 男 결국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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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출신 화가 제임스 티소
39세에 만난 '인생의 사랑'
그의 아름다운 사랑과 작품
39세에 만난 '인생의 사랑'
그의 아름다운 사랑과 작품
그러던 중 한 신사가 남자에게 다가와 인사를 건넵니다. 반가움도 잠시뿐. “저기, 미안하지만…. 다음 모임부터는 나오지 말아 줬으면 하네. 그리고 나도 자네에게 실망했네.”
잘나가는 ‘런던의 파리지앵’
17살이 되던 해, 티소는 부모님께 “화가가 될 거니 그림 공부를 시켜 달라”고 말을 꺼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자식 입에서 “예술 하겠다”는 소리가 나오면 부모 가슴은 덜컥 내려앉는 법. “그림 공부 따위 시간 낭비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 마라!”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 역시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20세의 나이로 티소는 파리로 그림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파리 살롱과 런던의 왕립예술원 등 주요 전시장에 그림을 선보이면서 그럭저럭 괜찮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모든 걸 버리고 택한 그녀
기나긴 항해 도중 캐슬린은 한 남자와 뜨거운 사랑에 빠졌습니다. 미래의 남편을 생각하면 용서받지 못할 일. 하지만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던 그녀에겐 이성보다 감정이 앞섰습니다. 남편 될 사람의 얼굴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죄책감도 덜어졌습니다. 어찌어찌 도착한 인도에서 결혼식까지 올렸지만, 누군가의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깨달은 캐슬린은 남편에게 진실을 고백했습니다. 바로 이혼 절차가 시작돼 이듬해 이혼이 확정됐습니다. 그리고 캐슬린은 언니 집에 얹혀살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런 과거 따위는 티소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혼했든 애가 딸렸든, 티소는 지금의 그녀를 사랑했습니다. 둘은 1876년부터 같이 살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결혼은 하지 못했습니다. 티소가 이혼과 재혼을 사실상 금지하는 가톨릭 신자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행복은 길지 않았습니다. 캐슬린이 당시로서는 불치병이었던 폐결핵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슬픔, 그리고 20년
그러던 중 1880년대 말부터 그는 종교에 몸과 마음을 맡기고 성경을 소재로 한 그림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그는 인간사 따위엔 관심 없다는 듯 쭉 종교화만 그렸습니다. 그러다 1902년 6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죽을 때까지 그는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작품을 완성한 티소. 20년간 늘 이 그림을 곁에 두고 캐슬린을 추억했습니다. 전시에는 몇 번 내놨지만, 결코 팔지는 않았습니다. 그의 인생 66년을 통틀어 진정으로 행복했던 시기는 오직 캐슬린과 함께 한 6년뿐이었을 것입니다. 이후 티소는 20년을 슬퍼하며 보내야 했습니다. 하지만 결코 그는 후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사랑은 아름다운 작품과 이야기로 영원히 남았습니다.
따져보면, 우리의 인생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6년보다 길든 짧든 사랑하는 사람들은 언젠가 모두 시간이 흐르면 내 곁을 떠나갑니다. 예외는 없습니다. 그래서 영국의 시인 G.K. 체스터턴의 싯구를 떠올리게 됩니다. “사랑하는 건 쉽다. 그것이 사라질 때를 상상할 수 있다면.”
꽃 피는 봄날입니다. 모처럼 사랑하는 이들과 나들이를 나서보는 건 어떨까요. 우리에겐 티소만한 그림 실력이 없지만 스마트폰 카메라가 있잖아요. 예쁜 사진들도 찍을 수 있겠지요. 아름다운 추억과 작품으로, 언제까지나 남을 겁니다.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이번 기사에 포함된 정보는 영문 서적 Tissot(Christopher Wood, 1986), The Hammock(Lucy Paquette)을 참조했습니다.
<그때 그 사람들>은 미술과 고고학, 역사 등 과거 사람들이 남긴 흥미로운 것들에 대해 다루는 코너입니다. 토요일마다 연재합니다. 쉽고 재미있게 쓰겠습니다.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시면 연재 기사를 비롯해 재미있는 전시 소식과 미술시장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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