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가장 추웠던 한 해.’ 출판업계는 2022년을 이렇게 기억한다. 코로나19로 인한 ‘집콕’ 특수가 끝나고 야외 활동이 늘면서 도서 시장은 전반적으로 위축됐다. 종이값 상승 여파로 책값이 오른 것과 증시 및 부동산 시장 침체로 재테크 서적이 부진했던 것도 한몫했다. 이에 비해 우리 주변 일상을 다룬 따뜻한 소설들이 인기를 끌었다. 한국경제신문 문화부 기자들이 뽑은 올해 출판계 10대 뉴스를 정리했다.

원자재 파동에 책값도 올라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출판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글로벌 원자재 수급에 문제가 생기면서 종이 원료인 펄프값이 급등해서다. 지난해 말 t당 655달러였던 펄프 가격은 약 60% 오른 1033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이러니 책값이 오르지 않을 수 없다. 출판사들은 책값을 두 자릿수 올렸다. 그럼에도 출판사 살림살이는 더 빠듯해졌다. 출판계는 “책은 공공재적 성격을 지니고 있어 원자재 가격 인상을 책값에 100% 반영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재테크 도서의 몰락

재테크 도서 시장은 올해 된서리를 맞았다. 코로나19 이후 상승장을 이끈 유동성 장세가 막을 내렸기 때문이다. 금리 인상 등 여파로 재테크 시장이 주춤하자 경제경영서 판매량이 급격하게 쪼그라들었다. 지난해 교보문고의 경제·경영분야 판매권수는 전년보다 22.1% 늘었지만 올해는 13.7% 감소했다. 주식·증권 도서 판매권수는 전년보다 43.8% 쪼그라들었다.

편의점, 동네책방…‘일상의 소설’ 인기

[책마을] 파친코, 불편한 편의점, 저주토끼…소설이 지배한 올해 서점가
문학은 강세였다. 특히 편의점, 동네책방 등 일상적 공간을 배경으로 한 ‘힐링’ 소설이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올해 가장 많이 팔린 책은 김호연의 장편소설 <불편한 편의점>이다. 지난해 4월 출간된 이 소설은 1·2권을 합쳐 최근 누적 판매량 100만 부를 돌파했다.

이 소설은 서울 청파동 골목의 작은 편의점을 배경으로, 노숙인 출신 주인공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며 동네 이웃들과 나누는 희로애락을 따뜻하고 유쾌하게 그려냈다. ‘번아웃’ 증후군으로 대기업을 퇴사한 주인공이 동네책방을 여는 내용의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등도 주목받았다.

출판 시장 뒤흔든 <파친코>

[책마을] 파친코, 불편한 편의점, 저주토끼…소설이 지배한 올해 서점가
올해 출판계에서 가장 이슈가 된 책은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다. 2018년 국내에 출간된 이 책은 지난 3월 애플TV+ 드라마로 공개된 후 폭발적 인기를 누렸다. 각 서점이 발표한 ‘올해의 책’ 1위에 올랐고, ‘올해 가장 많이 재생된 오디오북’(윌라 기준)으로도 꼽혔다. 소동도 벌어졌다. 이 작가가 기존 출판사와 한국어본 판권 계약을 연장하지 않으면서 절판된 것. 한때 중고책이 정가의 2~3배에 거래되기도 했다. 출판사 간 치열한 경쟁 속에 <파친코> 판권은 인플루엔셜에 넘어갔다. <파친코>와 이 작가의 또 다른 작품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을 포함한 선인세(출판 계약금)는 280만달러(약 36억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작가가 제시한 걸로 전해진 최소 선인세 금액(20만달러)의 10배를 웃돈다.

이수지, 에르노… 올해의 수상자들

안데르센상 수상자 이수지
안데르센상 수상자 이수지
노벨문학상 수상자 아니 에르노
노벨문학상 수상자 아니 에르노
그림책 작가 이수지가 한국인 최초로 안데르센상을 받았다. 일러스트레이터 부문이다. 이 상은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린다. 덴마크 여왕이 직접 증서와 메달을 수여한다. <여름이 온다> 등을 펴내며 20여 년간 왕성하게 활동해온 그는 “아이의 현실과 환상 세계를 책의 물성을 토대로 꾸준히 탐구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올해 노벨문학상은 프랑스 소설가 아니 에르노가 받았다.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 번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에르노는 자전적 소설로 시대를 향해 도발적 질문을 던져왔다.

부커상 후광에 <저주토끼> 역주행

<저주토끼> 부커상 후보 정보라
<저주토끼> 부커상 후보 정보라
영국 부커상은 노벨문학상,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힌다. 올해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1차 후보(롱리스트) 13편 중에는 정보라 작가의 <저주토끼>와 박상영 작가의 <대도시의 사랑법> 등 두 편이 포함됐다. 한국 작가 작품이 두 편이나 후보에 오른 건 올해가 처음이다. 두 책은 출간된 지 제법 시간이 지났지만 ‘부커상 후광효과’에 힘입어 서점가 베스트셀러 순위를 ‘역주행’했다. <저주토끼>는 2017년, <대도시의 사랑법>은 2019년 나왔다. 더구나 정 작가는 등단 이력이 없는 무명 작가였다. 책이 다시 주목받자 <저주토끼>를 출간한 아작 출판사는 표지를 새로 입힌 리커버 에디션을 출간했다.

‘시대의 지성’ 이어령 타계

지난 2월 이어령 선생이 암 투병 끝에 향년 88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고인은 문학평론가와 언론인, 교수 등으로 활동한 대표적인 석학이었다. 노태우 정부 때 신설된 문화부 초대 장관을 지냈다. 시인 이상을 재조명했고, 88 서울 올림픽 때 ‘벽을 넘어선’란 구호를 만들었다. ‘축소 지향의 일본인’과 ‘한국인의 젓가락 유전자’ 등의 개념으로 각국의 문화적 특성을 통찰하기도 했다. 서점가에는 그의 타계를 계기로 ‘이어령 열풍’이 다시 불었다. 그의 미공개 육필 원고인 <눈물 한 방울>을 비롯해 많은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헤어질 결심> 등 대본집 열풍

[책마을] 파친코, 불편한 편의점, 저주토끼…소설이 지배한 올해 서점가
대본집, 포토에세이 등 흥행 영화, 드라마와 관련된 책이 인기를 끈 것도 올해 주목할 만한 트렌드였다. 박찬욱 감독에게 칸국제영화제 감독상을 안겨준 영화 <헤어질 결심>의 각본집은 예스24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3주 연속 지켰다. 8만 부 넘게 판매됐다.

예스24 관계자는 “올해 예술 분야 베스트셀러 1~8위를 영화·드라마 대본집이 싹쓸이했다”며 “콘텐츠 관련 소비에 적극적인 2030여성을 중심으로 책을 통해 영화를 깊이 있게 이해하려는 움직임이 확연했다”고 했다.

서울국제도서전 등 오프라인 행사 기지개

야외활동이 다시 열리면서 저자 강연 등 출판 관련 오프라인 행사가 기지개를 켰다. 국내 최대 책 축제인 서울국제도서전도 돌아왔다. 코로나19가 상륙한 뒤 온라인으로만 열거나 작게 운영했는데, 올 6월에는 서울 코엑스를 빌려 성대하게 치렀다. 독서 애호가들은 환호했다. 사전 예매만 2만 명, 행사 기간 약 20만 명이 행사장을 찾았다. 도서전 홍보대사인 김영하 작가는 “보통 도서전 첫날에는 사람이 많이 오지 않는데 깜짝 놀랐다”며 “책과 책을 둘러싼 문화에 대한 갈증이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국 소설가 위화 등 한국을 찾는 해외 저자도 늘고 있다.

‘인앱 결제 불만’ 출협, 구글에 소송

전자책 시장이 커지면서 이런저런 문제가 불거졌다. 대표적인 게 출판사 모임인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가 지난 10월 구글을 상대로 소송을 낸 것이다. 출협은 구글이 2020년부터 강제하고 있는 ‘인앱 결제’가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구글은 구글 플레이스토어를 통해 팔리는 전자책, 웹툰, 웹소설 등에 대해 최대 30%의 수수료를 가져간다. 출협은 “국회가 8월 관련법 개정을 통해 인앱 결제를 강요하지 못하게 했지만 구글은 불공정 행위를 계속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구은서/임근호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