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은 공학보다 예술에 가깝다"
많은 한국인은 오래전부터 건축과 예술은 다른 개념이라고 생각했다. 화려한 건축물은 사치라고 여기는 유교의 영향이 컸다. 궁궐이나 종교 건축물을 제외하면 볼 만한 건물 문화재가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눈, 비만 피할 수 있으면 충분했던 빈곤의 시대와 빨리, 많이 짓는 게 목표였던 고도 성장기를 거치면서 ‘건축=공학’이란 시각은 한층 강해졌다. 외국인들이 기겁하는 ‘성냥갑 아파트’가 우후죽순처럼 생긴 배경이다.

반면 서양에서는 건축을 회화·조각에 버금가는 중요한 예술 장르로 대접했다. 17세기에 설립된 프랑스 국립예술학교인 에콜 데 보자르 본관에 ‘회화, 조각, 건축’이라는 문구가 걸려 있는 것도, ‘미술 올림픽’으로 불리는 세계 최고 권위의 예술전인 베네치아비엔날레가 1980년부터 미술전과 건축전을 번갈아 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술과 건축에 모두 통달했던 거장도 숱하게 많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 ‘근대 건축의 아버지’ 르 코르뷔지에가 대표적이다.

먹고 살 만해진 지금 이 순간, 한국인들은 아직도 건축을 공학으로 볼까, 아니면 예술로 생각할까. 서울 인사동 토포하우스에서 열리고 있는 ‘기적의 상자, 706호의 건축적 풍경’(사진) 전시를 보고 난 관람객들은 후자에 고개를 끄덕인다. 전시장에 있는 건축작품 16점을 보면 저절로 그렇게 된다.

작가는 한국건축가협회상을 두 차례 수상한 건축가이자 국내 최고의 르 코르뷔지에 전문가로 알려진 정진국 한양대 건축학부 교수(전 한양대 공과대학장). 이번 전시는 그의 정년 퇴임을 기념해 열렸다. 전시 제목에 있는 ‘706호’는 그의 연구실 방 번호다. 대학원 시절 706호에서 정 교수에게 배우며 성장한 제자들도 9개 팀을 이뤄 이번 전시에 14점을 내놨다.

관람의 출발점은 갤러리 건물 앞이다. 토포하우스 건물이 정 교수가 2004년 설계한 ‘작품’이어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4.6m에 이르는 높은 층고와 천장에서 쏟아지는 햇빛이 감각을 일깨운다. 전시를 기획한 이종우 명지대 건축학부 교수는 “르 코르뷔지에의 ‘기적의 상자’는 누구나 재능을 펼칠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을 의미하는 개념”이라며 “전시 제목에 정 교수와 그의 제자들이 만든 작품들을 한 자리에 펼쳤다는 뜻을 담았다”고 했다.

전시장에는 건축 모형 작품들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부석사와 용궁사를 그린 김희백의 그림과 건축 설계사이자 레고 본사가 공인한 레고 작가인 이재원의 ‘기적의 브릭’도 있다. 정 교수는 “건축이 회화·조각과 함께 예술의 영역에 속하는 건 분명한 사실”이라며 “레고 작품도 건축물인 점을 감안해 그림과 나란히 놓았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21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