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아침] 가슴 울린 한센병 작가들
전남 고흥 소록도는 한센병 환자들이 강제 수용되기 시작한 1916년 이후 ‘천형의 땅’이었다. 1963년 강제 격리 정책이 폐지되기 전까지 정부는 한센병 환자와 이들의 가족을 무자비하게 섬에 몰아넣었다. 병원이 있는 섬 왼쪽 지대에는 환자들이, 오른쪽에는 병에 걸리지 않은 가족과 직원들이 살았다.

환자와 가족들은 한 달에 한 번 두 지역을 가로지르는 도로에서 만날 수 있었다. 전염을 막기 위해 환자들은 바람이 불어오는 쪽을 향해 일렬로 늘어섰다. 가족은 바람을 등지고 멀리 섰다. 이 장소를 환자들은 ‘수탄장(愁嘆場)’이라고 불렀다. 가족을 앞에 두고도 한 번 안아보지 못하고 탄식하는 장소라는 뜻이다.

한센병 환자 강선봉 화백(83)도 어린 시절 이곳에서 수없이 많은 탄식을 내뱉었다. 여덟 살이던 1939년 한센병을 앓는 어머니를 따라 섬에 강제 격리된 뒤부터다. 5년 후에는 자신도 병에 걸렸다. 그의 작품 ‘수탄장’은 이런 안타까운 사연이 녹아 있는 그림이다.

서울 인사동 토포하우스에서 열리고 있는 ‘소록도 사람들의 아주 특별한 외출’은 강 화백을 비롯한 소록도 미술인 14명의 작품 총 60여 점을 만날 수 있는 전시다. 이들은 2016년 ‘해록예술회’를 창립한 뒤 지금까지 22회의 전시를 여는 등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병으로 손가락을 잃어 팔에 붓을 묶고 그림을 그리는 작가도 있다. 이들의 오랜 꿈은 한국 미술의 중심지인 인사동에서 전시를 여는 것이었다고 한다. 전시에 참여한 김영설 화백(88)은 “이번 서울 전시가 내 생애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인근 유명 화랑에서 열리는 전시들과 비교할 때 작품 수준이 높은 것은 아니다. 참여 작가 대부분이 70~80대인 데다 병 때문에 손발이 불편한 탓이다. 하지만 작품에 담긴 이들의 삶과 회한 섞인 이야기는 그 어떤 명화보다 가슴을 울린다. 김찬동 전 아르코미술관장은 “환란과 핍박의 역사 속에서도 삶을 지탱하며 소망을 가꿔온 그들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고 평했다. 전시는 오는 18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