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라노 서선영(가운데)이 예술의전당 국립오페라단 연습실에서 베르디 오페라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의 1막 아리아를 부르고 있다.  국립오페라단  제공
소프라노 서선영(가운데)이 예술의전당 국립오페라단 연습실에서 베르디 오페라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의 1막 아리아를 부르고 있다. 국립오페라단 제공
“대본을 보는데 3년 전 서울시 합창단의 오페라 칸타타 ‘유관순’에 출연했을 때 피가 끓어올랐던 기억이 되살아나더라고요. 엘레나가 ‘시칠리아의 유관순’ 같았습니다. 음악적 난도가 높고 연기 부담이 큰 배역이지만 도전해보기로 마음먹었죠.”

소프라노 서선영(38)이 다음달 2~5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오르는 국립오페라단의 베르디 오페라 ‘시칠리아 섬의 저녁 기도’에서 여주인공 엘레나 역을 맡는다. 국립오페라단이 국내 초연하는 이 작품은 1282년 시칠리아인들이 프랑스의 강압적 지배에 대항해 봉기를 일으킨 ‘시칠리아 만종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총 5막에 상연 시간만 200분에 달하는 대작이다.

30일 예술의전당 국립예술단체 연습동에서 만난 서선영은 “캐스팅 제의를 받고 한 달 반 넘게 고민했다”고 했다. “분량이 많을 뿐 아니라 곡도 굉장히 까다롭습니다. 운동경기에 비유하자면 체급을 무시했다고 할까요. 한 배역이 라이트급부터 헤비급까지 뛰어야 해요. 지금까지 해본 배역 중 가장 어렵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페라에 등장하는 소프라노는 목소리의 색깔 또는 창법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넓은 음역과 풍부한 음량으로 힘 있고 극적인 표현에 능한 ‘드라마틱’, 서정적이고 따뜻한 음색의 ‘리릭’, 악기적인 화려한 기교로 높게 부르는 ‘콜로라투라’다. 엘레나가 1막에서 부르는 ‘바다여, 아직은 잠자라’는 포르티시모(매우 세게)로 포효하는 듯한 카리스마를 발휘해야 하는 드라마틱 아리아다. 4막에는 서정적이고 감미로운 리릭 아리아가 나오고, 5막에는 현란한 고음 기교를 과시해야 하는 콜로라투라 아리아 ‘고맙습니다, 친애하는 벗들이여’가 등장한다.

“한 배역이 이렇게 소프라노의 모든 영역을 소화하는 작품은 매우 드뭅니다. 악보만 보면 작곡가가 무자비하게 느껴지기도 해요. 하지만 극의 상황이나 내용을 보면 베르디가 딱 맞게 쓰긴 했죠.”

서선영이 출연을 결심하게 한 결정적 요인은 엘레나라는 캐릭터였다. 극은 시칠리아 공녀 엘레나와 저항군 리더 아리고, 프랑스 총독 몽포르테, 독립투사 프로치다 등 4명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엘레나는 시칠리아인들에게 저항을 일깨우고 봉기에 앞장선다. 자신의 오빠를 죽인 총독을 연인인 아리고와 함께 암살하려 하지만, 총독이 연인의 친부인 것을 알고 마음이 흔들리기도 한다. “폭력이 아니라 평화적인 방법으로 선동하고 독립을 외치는 장면에서 유관순 열사가 떠올랐어요. 엘레나는 자신의 운명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돌파해요. 설령 죽음의 길이라도 묵묵히 나아갑니다.”

서선영은 연기 스펙트럼이 넓어 다양한 배역을 소화해낼 수 있는 소프라노로 정평이 나 있다. 2011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성악 부문 우승으로 이름을 알린 그는 스위스 바젤 극장을 중심으로 유럽 무대에서 활동하다가 2016년 국립오페라단 ‘루살카’로 국내 데뷔했다. 바그너 ‘로엔그린’ ‘탄호이저’ ‘발퀴레’, 푸치니의 ‘라 보엠’ ‘나비부인’ ‘토스카’, 베토벤 ‘피델리오’, 베르디 ‘돈 카를로’ 등 국내외 다양한 오페라 무대에서 주역을 맡아 호평받았다.

오는 9월에는 프랑스 몽펠리에 극장에 베르디 ‘아이다’의 아이다 역으로 데뷔한다. 그는 “제 목소리 자체는 원래 리릭이지만 드라마틱까지 다양한 배역을 해본 경험이 엘레나 역을 해내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며 “강인하면서도 발랄한 엘레나 캐릭터를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잘 표현하겠다”고 말했다.

송태형 문화선임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