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선 교수 "온통 암흑이라고요? 조금 기다리면 해피엔딩이 올 거예요"
‘콧물이 흐른다. 기쁘다.’

이지선 한동대 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 교수(44·사진)는 얼마 전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그는 스물세 살 때 술에 취한 사람이 몬 차에 들이받혀 전신 55%에 심한 화상을 입었다. 그때부터 받기 시작한 피부 이식 수술은 이미 40회를 넘겼다. 지금도 틈틈이 받는다. 하지만 콧물을 흘린 것은 사고 이후 처음이었다. 화상을 입은 피부가 딱딱해져 콧물은커녕 코로 숨을 쉬는 것조차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콧물이 나오는 것을 행복하다고 표현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 서울 송파구에 있는 한 카페에서 이 교수를 만났다. 그는 최근 《지선아 사랑해》 (2003년) 이후 20년 만에 신간 에세이집 《꽤 괜찮은 해피엔딩》을 출간했다. 사고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과정뿐 아니라 유학생활, 대학교수가 된 뒤 겪은 일 등을 담았다.

책을 읽다 보면 숱한 강연으로 단련된 ‘이야기 근육’의 내공이 느껴진다. 책은 코끝을 찡하게 만들다가 어느 순간 웃음을 터뜨리게 한다. 이 교수는 “새 책에 대한 SNS 반응을 찾아보는 게 요즘 저의 작은 행복”이라며 웃었다. “지난번 책은 너무 슬퍼서 다 못 읽었다고 하는 분들도 있었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솔직하고 유쾌하게 글을 쓰려고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웃긴다는 반응이 제일 듣기 좋아요.”

그는 스스로를 “사고와 잘 헤어진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인생이 어둠뿐인 터널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어요. 하지만 고마운 사람들의 손을 잡고 하루씩 걸어 나왔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제 삶에 소소하지만 즐거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죠.”

그는 책 제목에 ‘해피엔딩’을 넣은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사고를 딛고 선망하는 직업(교수)을 갖게 됐다는 이유로 제 인생을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있나요. 제가 행복을 느끼는 건 ‘지금이 끝이 아니라는 희망’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통스러운 기억과 잘 헤어지고 싶은 이들에게 그는 글쓰기를 권했다. “사람은 트라우마를 겪은 뒤 극심한 스트레스를 경험하기도 하지만, 회복 과정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맞이하기도 합니다. 이걸 ‘외상 후 성장’이라고 하더군요. 외상 후 성장에 이르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 바로 글쓰기예요. 상처를 직면하고 미래를 그려볼 수 있거든요.”

다른 이들의 도움도 필요하다. 그는 ‘사회적 지지’를 강조한다. 이 교수는 “화염 속에서 저를 구해낸 오빠, 일부러 화장을 지우고 허름한 옷을 골라 입고 병문안 왔던 친구들, 까다로운 수술을 20년간 맡아준 의사 선생님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이 교수도 사회공헌 활동에 열심이다. 2019년부터 코미디언 송은이, 가수 션, 이영표 강원FC 대표 등과 함께 부모가 수감 중인 청소년들을 돕고 있다. 피부 이식 수술 후 땀 배출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국내 최초 어린이 재활병원을 짓는 데 힘을 보태기 위해 두 차례나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했다.

책에는 자신이 20년 전에 쓴 일기를 읽는 대목이 나온다. 그는 20년 전 사고를 겪은 직후의 이지선에게 이런 말을 건네고 싶다고 했다. “조금만 기다려봐, 웃을 날이 더 많아져, 여기가 끝이 아니야”라고. 이 교수는 “지금 고통스러운 순간을 통과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똑같이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글=구은서 기자
사진=임대철 한경디지털랩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