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심장소리', 25분 내내 뛰는 아이…정체 모를 불안을 뒤쫓는 따뜻한 시선
어딘가를 향해 계속 뛰어가는 아이. 그 아이의 불안한 표정과 숨가쁜 호흡. 이것만으로 25분짜리 영화를 채웠다. 데뷔 25주년을 맞은 이창동 감독의 첫 단편 영화 ‘심장소리’(사진)의 압권은 몰입감이다.

이 작품은 지난달 28일 개막한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처음으로 공개됐다. 2018년 ‘버닝’ 이후 이 감독이 4년 만에 내놓은 작품이다. 그가 단편영화 연출을 맡은 건 처음이다. 작품엔 아역 배우 김건우가 출연한다. 전도연, 설경구도 참여했다.

영화는 8살 철이가 학교에서 수업을 받다가 왠지 모를 불안과 걱정에 사로잡히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철이는 선생님께 화장실에 간다고 말한 뒤 곧장 어딘가로 달려간다. 카메라는 이때부터 철이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채 그의 이동 과정을 담는다.

관객은 궁금증에 사로잡힌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아이가 뛰는지, 무엇이 8살 꼬마를 저리도 몰아세우는지. 관객은 점점 더 절박한 표정을 짓는 철이의 얼굴을 보면서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종착점이 어딘지 몰라도 응원한다.

아이가 달려가는 길엔 수많은 어른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온다. 누구는 철이를 걱정하고, 누구는 잔소리한다. 그 과정에서 철이를 둘러싼 이야기들이 하나씩 속살을 드러낸다. 어른들은 목소리뿐이다. 카메라는 어른을 거의 비추지 않는다. 아이가 그들의 질문에 답할 때도 카메라는 아이의 얼굴만 담아낸다.

작은 사건에서 출발한 이 영화는 아이가 뜀박질해야만 했던 이유를 드러내며 큰 주제에 도달한다. 철이 엄마가 가진 불안, 나아가 가족 전체의 불안을 야기한 사회적 환경을 차례차례 보여준다. 이 감독이 ‘초록물고기’ ‘박하사탕’ ‘밀양’ ‘시’ ‘버닝’ 등에서 보여준 영화 전개 방식과 연결된다. 소소한 이야기에서 시작해 거대한 불안과 공포에 다다르는 구조를 단편영화에서도 재연했다.

아이의 시선을 담은 만큼 이전 작품에 비해 섬세함과 따뜻함을 담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감독은 지난 2일 열린 간담회에서 “엄마를 살려야 한다는 욕망, 생명에 대한 갈구로 아이가 느끼는 심장소리를 관객도 느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오는 7일까지 열리는 전주국제영화제에선 이 감독의 특별전도 열린다. 초록물고기 등 이 감독의 대표작 8편이 함께 상영된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