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연극 '보이지 않는 손', 돈을 죄악시 여기던 인간…탐욕 앞에서 그는 어떻게 변할까
300만달러를 1년 안에 1000만달러로 불려야 한다. 정해진 기간 안에 목표 수익률 233%를 달성해야 하는 프로젝트. 풋옵션, 통화 바스켓 등 경제금융 용어가 오가는 연극 ‘보이지 않는 손’(사진)의 배경은 미국 월스트리트도, 여의도 금융가도 아닌 어느 파키스탄 무장단체의 좁은 감옥 안이다.

지난달 26일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에서 개막한 이 연극은 파키스탄 무장단체에 납치된 미국인 투자전문가 닉 브라이트가 풀려나기 위해 자신의 몸값을 종잣돈 삼아 투자에 나선다는 독특한 이야기다. 파키스탄계 미국인 작가 에이야드 악타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었다. 2011년 미국 세인트루이스에서 처음 선보인 이 공연은 영국과 독일 등에서도 막을 올렸다. 2015년 오비상 극작상과 외부비평가협회상인 존 개스너 극작상 등을 받았다. 공연기획사 연극열전이 국내 첫 라이선스 공연으로 선보였다.

4인극 형식을 취한 이 연극은 네 명의 인물 모두 입체성을 띠어 서사가 풍성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미국인 투자 전문가 닉 브라이트(김주헌·성태준 분)와 파키스탄 무장단체의 수장 이맘 살림(김용준·이종무 분), 조직원 바시르(김동원·장인섭 분), 다르(류원준·황규찬 분) 등 각 인물의 성격과 자본주의를 대하는 태도가 변화해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이슬람 율법에 따라 ‘이자놀이’를 죄악으로 여겼던 바시르는 닉의 투자 과정을 바라보며 자본주의에 눈을 뜨게 된다. 이맘 살림 역시 돈을 ‘인민의 아편’쯤으로 여기며 비하했지만 결국 닉이 불린 돈으로 비자금을 챙기는 이중적 면모를 보인다.

극은 자본주의의 위대함으로 시작하지만 그것에 대한 맹신이 답이라는 결론은 내리지 않는다. 바시르는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정의감에 사로잡혀 있지만 그 수단으로 필요한 돈을 만들기 위해 대형 폭탄테러를 기획하는 모순을 보인다. 파키스탄 화폐 가치 폭락을 유도해 파생상품으로 수익을 내기 위해서다. 이처럼 주객이 전도된 상황에서 괴물이 된 자본주의의 무서움을 보여주려 한 연출자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특히 랜턴 조명에 비친 닉의 작은 손이 거대한 손 그림자로 확대되는 장면에선 ‘보이지 않는 손’의 탐욕스러움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딱딱하고 어려운 경제·금융을 다루지만 긴장감 있는 연출로 이야기를 지루하지 않게 풀어간다. 주식 등 투자 경험이 있는 관객이라면 더욱 몰입할 수 있다. 좁은 방에 갇혀 극을 시작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이끌어나가는 성태준의 연기는 마치 링 위의 격투기 선수를 연상케 한다. 상대적으로 적은 분량의 대사지만 표정 등으로 명확한 감정선의 변화를 보여주는 황규찬의 연기도 강렬하다. 공연은 다음달 30일까지.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