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스판 닮은 레고 주택, 어긋난 배치가 주는 묘한 리듬감
경기 성남시 하대원동 구시가지 외곽의 한 주택가를 걷다 보면 거대한 체스판 같은 건물 하나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낡고 오래된 주택 사이 격자무늬 파사드(건축물 전면 외벽)를 뽐내는 이 건물은 ‘하대원 행복주택’이다. KKKL 건축사사무소에서 설계해 2019년 준공한 이 건축물은 마치 철제로 지어진 듯한 단단함과 강인함이 뿜어져 나온다.

레고를 쌓은 듯한 ‘모듈러 주택’

경기도시공사의 첫 번째 모듈러주택사업으로 세워진 하대원 행복주택은 노약자와 청년, 대학생 등을 위한 공공임대주택이다. 2020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준공건축물부문 우수상, 같은해 한국건축가협회상 건축물부문을 수상했다.

독특한 파사드 형태 때문인지 건물이 어린이 장난감 블록인 ‘레고’를 쌓아 올린 듯 보인다. 맞다. 레고로 만든 장난감 집처럼 이 건물도 블록 형태의 모듈(철골 구조체)을 쌓아 올려 지었다. 최근 건축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모듈러 공법’이다. 모듈러 공법은 건물의 최소 단위인 모듈을 미리 디자인해 공장에서 70~80%가량 만든 뒤 옮겨와 하나씩 조립하는 건축공법이다. 모듈을 먼저 쌓아 올리고 이후 창호와 외벽재 등 부품들을 현장에서 설치해 완공한다. 모듈러 공법의 가장 큰 장점은 공사기간 단축이다. 원래대로 지었으면 6개월이 걸릴 공사기간이 이 공법을 통해 단 6주로 줄었다.

단조로움을 깨는 디테일, 수직 루버

이 건물은 건축 미학적으로 지루함이나 단조로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비밀은 모듈 하단부에 수직으로 설치한 ‘루버(난간)’에 있다. 건물은 똑같은 모양의 모듈을 층층이 반듯이 쌓아 올리고 남쪽 벽 전체를 창호로 설계했다. 설계자들은 루버로 차별화했다. 빨간 벽돌로 쌓아 올린 담장처럼 고정창이 있는 모듈 위쪽과 루버가 있는 모듈 아래쪽을 서로 엇갈리게 배치했다.

수직 루버의 간격과 배치도 다양하다. 추락 방지를 위한 난간 역할을 하는 쪽은 루버 간격을 넓게, 또 안쪽 창에 가깝게 붙였다. 반면 에어컨 실외기를 감추기 위한 스크린 역할을 하는 루버는 간격을 좁게, 또 창에서 멀게 설치했다. 위아래가 서로 어긋남과 동시에 굴곡 있는 루버의 리듬으로 남쪽 입면을 완성한 덕에 건물은 묘한 리듬감을 느끼게 한다.
레고 쌓듯 짓는 모듈러 공법.
레고 쌓듯 짓는 모듈러 공법.
루버를 통해 엇갈리게 디자인한 남쪽 입면의 동적인 이미지를 전면부로 이어가기 위해 설계자들은 파사드 모듈을 한 칸씩 건너 엇갈리게 배치했다. 사각형 모양으로 튀어나온 파사드 모듈과 모듈 사이 움푹 들어간 부분은 깊이감을 주기 위해 미끄럼틀 모양과 비슷한 삼각형 모듈로 채워 넣었다. 그 결과 진회색 세라믹 돌출 입면이 교차하는 형태가 됐다. 독특한 모양의 파사드는 층간 구분을 감춰주는 역할도 한다. 이 때문에 3층짜리 건물임에도 마치 5층처럼 스케일이 커진 듯한 착각이 들게 한다.

내부 동선의 시작과 끝은 ‘공유공간’

하대원 행복주택 내부.
하대원 행복주택 내부.
건물 내부는 공간의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한 의도가 숨어 있다. 내부 동선의 시작과 끝이 모두 입주민의 공유 공간으로 연결돼 있다. 먼저 1층 출입구 근처에는 세탁실 등 다양한 편의시설과 각종 모임 및 교류를 위해 이용할 수 있는 커뮤니티룸이 있다. 천장을 통해 떨어지는 자연광이 이 커뮤니티룸과 미닫이문으로 연결된다. 커뮤니티룸은 다시 계단실이 있는 밝은 톤의 아트리움으로 이어진다.
커뮤니티 공간.
커뮤니티 공간.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전용면적 18㎡ 크기의 주거 공간이 나타난다. 길고 좁은 듯한 실내 구조지만 남쪽 고정창을 통해 자연광을 받아 화사한 느낌을 준다. 무엇보다 밝은 톤의 흰색이 건물 내부 대부분을 가득 채운 가운데 주요 인테리어 포인트를 외부와 똑같은 진회색으로 넣었다. 이 때문에 전체적인 통일감과 안정감을 준다. 내부 동선은 거주민을 위한 옥상 테라스에서 마무리된다. 야외공간처럼 보이지만 건물 일체형 태양광발전 시스템(BIPV) 차양이 설치된 사실상 반(半) 외부공간이다. 이곳에서 건물 전면과 좌우면을 향한 멋진 뷰를 볼 수 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