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800쪽에 눌러 담은 '열하일기의 모든 것'
최초의 제대로 된 ‘열하일기’ 연구서로 불렸다. 한 세대가 지난 지금도 “거의 유일한 본격 연구서”로 꼽힌다. 김명호 전 서울대 교수가 쓴 《열하일기 연구》 얘기다.

열하일기의 무궁무진한 가치를 소개하고, 연암 박지원에 관한 연구 흐름을 바꾼 《열하일기 연구》의 개정·증보판이 나왔다. 초판 출간 32년 만이다. 그간의 연구 성과를 주석에 담았고 ‘호곡장론’ 문체 분석과 ‘일신수필’ 텍스트 분석, 열하일기 이본(異本)의 특징을 담은 논문을 추가했다.

열하일기는 방대한 규모와 진보적 사상, 탁월한 표현력으로 연암 문학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조선 시대 한문학 중 근대 지향적인 성격이 가장 뚜렷한 저작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런 열하일기 전체를 하나의 완결된 문예 작품으로 보고, 그 문학적 탁월성을 다각도로 조명했다.

연암은 손과 발을 총동원해 열하일기를 썼다. 중국인과 나눈 필담, 각종 문건과 비문, 서적류에서 발췌한 내용, 그때그때 견문을 적은 메모, 명승고적을 접할 때마다 채록한 비문과 주련을 바탕으로 했다. 만주가 고조선과 고구려의 영토였다는 주장을 펴면서 《삼국사기》 《당서》 《자치통감》 《금사》 《문헌통고》 《요사》를 인용하는 등 당대 지식을 집대성했다. 방대한 분량이 말해주듯 단시일에 저술된 것이 아니고 누차 수정·보완됐다.

현실 문제 해결을 위한 고심이 반영된 저작이기도 했다. 연암에게 연행(베이징에 사절로 방문하는 것)은 단순한 유람이 아니었다. 젊은 시절 벗들과 함께 연구하고 토론했던 것을 세계 중심지에서 직접 확인한다는 의미를 지녔다. 당시 청나라는 태평을 구가하고 있었다. 상업을 중시한 청조의 눈부신 경제적 번영은 연암의 눈을 사로잡았다. 잘 정비된 도로와 교량, 수레와 선박의 활발한 왕래는 큰 자극이 됐다.

번영을 누리던 청조의 사회상을 다채롭고도 힘찬 필치로 그려 나간 연암의 필력에 독자는 압도됐다. 청조의 실상에 비춰 조선의 현실을 진단하고 개혁 방안을 제시하는 역할도 톡톡히 했다.

열하일기에는 시대를 앞서가는 내용이 적지 않게 담겼다. 중국과 조선의 언어 차이에 주목해 일찍부터 민족 문학에 눈을 떴다. 정통 고문체와 패관소설체를 망라한 다채로운 문체를 구사하고 조선식 한자어를 적극 수용했다. 하층 민중도 개성을 지닌 인물로 형상화했다. 조선의 명문거족 반남 박씨는 중국에선 ‘들어본 적도 없는’ 미미한 존재라는 자각이 기저에 깔렸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정교한 텍스트 분석을 통해 ‘호질’이 연암의 창작품이 아니라 중국 현지에서 채록된 작품을 가필한 것이라는 등 눈길을 끄는 내용도 적지 않게 담겨 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