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준 기자
김범준 기자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향이 느껴진 거야…”

가수 장범준은 향기 하나로 옛사랑을 추억한다. 누군가에게 특별하고 기분 좋은 향기로 기억되는 것은 모두의 ‘로망’이다.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나를 떠올리게 할 향기를 만들 수 있을까. 거리 곳곳에 ‘향수 공방’의 문을 두드리는 이가 늘고 있다. 이들은 말한다. “나만의 향을 갖고 싶어요.”

한 시간이면 뚝딱

서울 창천동 향수공방 ‘루나밍’에선 시중에서 살 수 없는 독창적인 향기 제품이 매주 40여 개 탄생한다. 향은 물론 모양, 색상, 주제 등 어느 하나 같은 게 없다. 이곳을 찾은 누군가가 자신이 쓰거나 선물할 용도로 만든 ‘향 DIY’ 제품들이다.

DIY로 제조할 수 있는 향 제품의 종류는 다양하다. 향수, 디퓨저(액상 방향제), 젤캔들, 석고방향제, 차량용 방향제 등이 대표적이다. 이곳에선 2만5000~3만원을 내면 한두 시간 수업을 들으며 향기 제품을 만들 수 있다. 김영미 루나밍 대표는 “향은 그 사람의 인상과 분위기를 떠올리게 하는 힘이 있다”며 “원하는 향을 만들고 이용하면서 개성을 드러내려는 수요가 부쩍 많아졌다”고 말했다.
1시간, 가슴이 허락한 향기가 완성된다
‘향 전문가가 아닌데 괜찮을까’하고 망설이다 작업대에 앉았다. 투명한 젤 왁스를 사용해 인테리어 소품으로도 쓸모있는 젤캔들부터 제작했다. 7온스짜리 용기 중앙에 심지를 고정하고, 손톱보다 작은 디자인 재료로 용기 안을 꾸몄다.

파란색 모래와 하얀색 모래를 켜켜이 쌓아 바다를 만들고 불가사리, 조개껍데기 등을 얹었다. 향수 원액(에센셜 오일) 70여 종의 향을 맡아보다 맑고 깨끗한 대나무 향인 ‘뱀부’를 골랐다.

향수 원액은 대부분의 향기 제품에 들어가는 필수 재료다. 통상 허브나 식물로부터 추출한 휘발성 높은 방향성 오일이다. 어떤 원액을 고르고 얼마나 첨가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 뜨겁게 녹인 젤 왁스를 향수 원액과 섞어 용기에 부어 젤캔들을 완성했다. 약 한 시간에 걸쳐 만든, 하나뿐인 향 제품. 짜릿한 감동이 밀려왔다.

계절마다 다른 향으로

디퓨저는 가장 손쉽게 만들 수 있는 향 제품으로 꼽힌다. 완성까지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원하는 향수 원액을 골라 디퓨저 베이스와 섞어 용기에 담는 것으로 끝이다. 여러 향을 조합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때 저울을 이용해 비율을 향수 원액 20%, 디퓨저 베이스 80%로 맞추는 게 중요하다. 식물 줄기의 물관처럼 디퓨저 용기에 있는 향을 위로 끌어당길 ‘디퓨저 스틱’ 디자인을 고르면 완성된다. 디퓨저는 7일 정도 숙성기간이 지난 뒤 스틱을 꽂아 사용하면 된다.

김 대표는 “내 손으로 만든 향으로 특별한 일상을 보내는 게 재미있다는 반응이 많다”고 했다. 계절마다 어울리는 디퓨저를 만드는 ‘향 DIY 마니아’도 있다. “여름엔 청량하면서도 산뜻한 아쿠아 향을 중심으로 향 제품을 제작하는 게 인기”라고 한다.

더 특별한 향을 찾는다

향 전문가들은 “명품 향수만 주목을 받던 시절은 지났다”고 입을 모은다. 어딜 가나 살 수 있는 향보다 희소성 있는 향으로 만족감을 얻는 흐름이 강해지고 있다는 얘기다. 롯데호텔이 서울 신천동에 있는 특급호텔 ‘시그니엘’에 적용한 ‘워크 인더 우드’ 향을 디퓨저(200mL·8만8000원)로 판매하고 나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롯데호텔 관계자는 “이곳 특유의 고급스러운 향을 집에서도 즐기려는 수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 1~5월 이 디퓨저의 판매량은 전년 대비 세 배 이상 증가했다. 이 같은 추세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