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미국은 어떻게 세계와 손잡아왔나
1778년 2월 6일 저녁, 프랑스 파리에 있는 샤를 그라비에 베르겐공작 사무소. 낡은 청색 맨체스터 코트를 입은 벤저민 프랭클린이 미국·프랑스 간 군사동맹 협정과 무역협정에 서명했다. 미국 최초의 외교관이 영국에 대한 ‘원수를 갚는’ 외교를 시작한 것이다. 당시만 해도 미국의 일거수일투족, 대외정책이 전 세계의 향방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곤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었다.

《세계 속의 미국》은 조지 W 부시 행정부 등에서 국무부 부장관, 무역대표부(USTR) 대표,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총재 등을 지낸 로버트 죌릭이 쓴 미국 외교사다. 건국의 아버지 때인 알렉산더 해밀턴 시대부터 부시 전 대통령 때까지의 미국 외교가 전개된 내용을 700쪽이 넘는 본문에 상세하게 담았다.

이 책은 미국 외교사의 상징과도 같은 헨리 키신저의 저서 《외교》를 의식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에 왔던 키신저는 어디까지나 유럽의 지적 전통에 뿌리를 둔 인물이었다. 반면 미국이 세계 최강국이 된 이후 태어난 죌릭의 시선이 키신저와 같을 수는 없다. 자신감 넘치는 ‘미국인’의 시각에서 세계 최강국 미국의 대외정책을 복기해 나간다. 미 행정부의 주요 직책을 맡아 ‘그레이트 게임’의 한 축을 담당한 인물이었던 만큼 보는 시야가 넓다.

책의 절반 이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중심으로 구축된 세계 질서가 어떻게 작동했는지에 할애한다. 한국 독자가 특히 관심을 가질 법한 분야는 동시대사라고 할 수 있는 2000년대 이후 미국 외교사다. 저자는 미국의 외교정책이 지속적으로 △북아메리카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무역과 초국경주의, 기술을 강조하고 △동맹과 질서를 중시하며 △국민과 의회의 지원을 신경 쓰고 △‘미국의 목적’이라는 목적의식·대의명분을 중시하는 경향을 유지했다고 강조한다.

이 다섯 가지 축은 한국과의 관계에도 결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저자가 ‘5대 독트린’으로 명명한 이 원칙들은 미국의 외교정책에서 좀처럼 변하지 않으며, 정책을 결정할 때마다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설명이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