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즈발레단이 2015년 선보인 창작 발레극 ‘마지막 탈출’의 한 장면.  와이즈발레단  제공
와이즈발레단이 2015년 선보인 창작 발레극 ‘마지막 탈출’의 한 장면. 와이즈발레단 제공
창작극을 통해 한국 발레계의 성장을 이끌어온 민간 발레단들이 보릿고개에 허덕이고 있다.

국내 최초 민간 발레단인 유니버설발레단(UBC)은 올초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단원을 75명에서 50명으로 줄였다. 전막 발레에 필요한 최소 인력만 남긴 것이다. 1995년 창단해 26년 동안 창작 발레 약 100편을 공연해온 서울발레시어터(SBT)는 35명에서 18명으로 몸집을 줄였다.

코로나19로 수익이 없는데도 인건비만 나가자 허리띠를 졸라맸다. 공연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해 3월 초부터 올해 2월 말까지 무용 공연 매출은 약 10억원. 전년 같은 기간 매출은 122억원이었다. 1년 새 90%나 줄어들었다.

공연계 성수기인 겨울 공연마저 무산되자 형편은 더욱 어려워졌다. 연말 공연의 고정 레퍼토리인 ‘호두까기 인형’과 ‘백조의 호수’가 전부 취소됐다. 한 발레단장은 “통상 12월 한 달 동안 벌어서 공연 수요가 줄어드는 4월까지 버틴다”며 “신용대출을 받아 발레단을 운영하고 있지만 언제까지 버틸지 모르겠다”고 했다.

길어지는 공연계 한파 속에 머물 곳을 잃은 발레단도 있다. 지난해부터 문화예술회관에 머무르는 예술단체가 한 곳으로 제한돼서다. 기존에 있던 단체는 밀려날 수 밖에 없었다. 경기 과천시민회관에서 20년 동안 터줏대감 노릇을 한 SBT는 지난해 방을 빼야 했다. 창단 16년차인 와이즈발레단도 상주단체 공모에서 탈락해 7년간 머물던 서울 마포아트센터를 떠났다. 프랑스에서 설립돼 한국으로 넘어온 서발레단은 수원SK아트리움에서 3년 동안 있었지만 지난해 다른 예술단에 장소를 내줬다.

다른 장르와 달리 발레단엔 연습실이 필수다. 발레극에 들어가는 코르드 발레(군무)를 연습해야 해서다. 무대 규모를 아무리 줄여도 무용수 30명은 동원해야 한다. 단원들이 개별적으로 연습해선 군무를 출 수 없다. 연습실이 없으면 한 벌에 100만원가량 하는 무대 의상과 고가의 무대 장치를 보관할 장소도 마땅치 않다.

발레계에선 민간 발레단이 휘청이면 한국 발레계 전체가 침체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재 국공립발레단은 두 곳. 국립발레단과 광주시립발레단뿐이다. 공공 발레단은 대중성을 고려해 창작극 대신 고전 발레를 주로 무대에 올린다. 최태지 광주시립발레단장은 “발레 생태계의 다양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민간 발레단 지원책이 필수적”이라며 “문화체육관광부가 내놓는 단기 일자리 정책만으론 발레단의 생존을 보장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