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학자 정광 명예교수가 기억하는 사촌형 정진석 추기경
"참 깨끗했던 분…성직자 안 됐으면 '지독한 학자' 됐을 것"
정광 교수 "정 추기경, 늘 책만 쓰고 무슨 재미로 사나 했어요"
"이제 명절에 찾아뵐 분도 없고, 의지할 곳도 없네요…"
국문학자 정광(81) 고려대 명예교수는 27일 정진석 추기경이 두 달 넘는 투병 끝에 선종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서 참담한 마음이 이를 데가 없었다.

명절 때면 가족들과 함께 가톨릭대 성신교정 주교관에 머물던 정 추기경을 찾아 여러 얘기를 나누고, 집안일을 의논해왔던 그다.

정 교수는 집안의 어른으로 여겼던 정 추기경이 투병 과정에서 고비를 여러 번 넘겨온 터라 이번에도 다시 기력을 찾을 것으로 기대했다.

만약에 어쩔 수 없이 떠나게 되는 것이라도 꼭 좋은 나라로 가길 바라는 마음이 컸으나 정작 그의 죽음을 접하자 허전함이 밀려왔다.

그는 정 추기경과 사촌지간이다.

정 교수 아버지가 집안 큰아들이고, 정 추기경 부친이 둘째다.

두 사람이 가까운 친척이라는 사실은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다.

정 추기경 부친인 정원모 씨는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을 하다 옥고를 치른 뒤로 중국으로 건너가 뤼순(旅順) 공과대학을 다녔다.

이후 북한에서 활동하며 고위 관료까지 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이복순 씨 사이에서 아들 한 명을 뒀는데, 그 사람이 바로 정 추기경이다.

정 추기경과 정 교수는 나이 차가 9살이나 나지만 어린 시절 의정부 미군부대 내 성당에서 함께 미사를 보고, 뛰어놀던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정 교수는 28일 전화 통화에서 "이달 초 정 추기경을 찾아뵈었을 때 '여러분들에게 고맙다'고 하시고, '지나온 일들이 가치 있고 좋았다'고도 했는데 사흘 전 마지막으로 병실을 찾았을 때는 많이 아파 힘들어하셨다"고 떠올렸다.

그는 "정 추기경은 평생을 종교인으로서 정말 결점 없이, 그 많은 스캔들 하나 없이 잘 지내셨다"며 "우리 가족 모두는 추기경을 존경하고, 참 깨끗했던 분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돌아봤다.

앞서 정 교수는 정 추기경이 투병에 들어간 지 10여 일 정도 된 지난달 2일 자신의 연구실에서 기자와 만나 사촌 형에 대한 기억을 담담하게 털어놓기도 했다.

정광 교수 "정 추기경, 늘 책만 쓰고 무슨 재미로 사나 했어요"
그는 정 추기경이 만약 사제가 아닌 학자의 길을 걸었다면 더 큰 발자취를 남겼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늘 보면 책을 쓰고 있었어요.

제가 속으로 '무슨 재미로 사시나'라고 생각할 정도였어요.

그분이 성직자가 안 됐으면 굉장히 지독한 학자가 됐을 겁니다.

저도 남한테 빠진다는 소리 듣지 않는 학자인데, 정 추기경에 비하면 저는 '잡놈'입니다.

(웃음)"
정 추기경은 신학생 때인 1955년 '성녀 마리아 고레티'를 시작으로 우리말로 번역한 역서가 13권에 이른다.

저서는 1961년 '장미꽃다발'부터 2019년 '위대한 사명'까지 45권에 달한다.

전체 50권을 훌쩍 넘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이중 라틴어 교회법전을 한국어로 옮긴 교회법전 번역 및 해설작업은 한국 가톨릭계에서 큰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제가 쓴 책이 60여 권 정도 되는데요, 정 추기경과 마치 경쟁하듯이 책을 냈다고 보면 됩니다.

정 추기경은 제가 책을 냈다고 말씀드리면 그렇게 좋아하셨어요.

"
정 교수는 정 추기경이 서울대교구장으로 있는 동안 고민을 놓지 못했던 때를 조심스럽게 언급하기도 했다.

고민 끝에 베네딕토 16세 교황에게 사의를 밝혔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일화를 그는 소개했다.

"정 추기경이 서울대교구장 때 정의구현(전국)사제단과 관계로 고민이 많았어요.

(교구장 정년인) 75세 때 물러나라고 해서 실제 베네딕트 교황에게 그만두겠다고 했는데, 서너 살 위였던 교황이 '나는 어떻게 하라고, 그 나이면 다 나가야 하느냐'고 말씀하셨다고 하더라고요.

다른 사람들은 정 추기경이 서울대교구장 자리를 좋아하는 것처럼 생각했으나 실제로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