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리스트의 삶은 연예인과 다름없어요. 화려하게 빛날 수 있지만 모든 게 불확실합니다. 다음달, 내년 일정이 안 잡히면 초조해지고 실력만큼 인정을 못 받기도 합니다. 안정적인 자리에서 더 넓은 음악세계를 경험해보고 싶었어요.”
바이올리니스트 이지윤
바이올리니스트 이지윤
2013년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콩쿠르, 2014년 윈저 페스티벌 국제 콩쿠르, 2016년 카를 닐센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 우승까지 한 바이올리니스트 이지윤(27)이 오케스트라를 택한 이유다. 이지윤은 생애 처음 본 오디션에서 단번에 450년 역사를 지닌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의 종신 악장이 됐다. 그는 오는 11일 경기 안성맞춤아트홀, 12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마시모 자네티 지휘로 경기필하모닉과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이지윤은 2017년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악장으로 입단했다. 1570년 창단한 베를린 슈타츠카펠레는 멘델스존, 바그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푸르트벵글러, 카라얀 등이 음악감독을 지낸 세계적인 악단이다. 1992년부터는 피아니스트 출신 지휘 거장 다니엘 바렌보임(77)이 음악감독을 맡고 있다. 이지윤은 지난해 제1바이올린 그룹 20명의 만장일치 찬성으로 종신 악장이 됐다. 당시 부악장으로 지원했지만 본선에 오른 악장 후보가 아무도 없어 그에게 악장으로 오디션을 볼 기회가 생겼다. 바렌보임은 그의 연주를 듣고 “독주자로도 충분한 실력인데 왜 오케스트라에 들어오려고 하냐”고 물었다. 이지윤은 “평생 바이올린 협주곡만 하기엔 음악의 세계가 너무 넓다”며 “다양한 연주 경험을 쌓고 싶다”고 답했다.

이지윤은 지난 2년간 많은 것을 새롭게 배워가고 있다고 했다. 특히 오페라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베를린 한스아이슬러음대에 다닐 때 바렌보임이 지휘하는 알반 베르크의 오페라 ‘보체크’를 보고 충격에 빠졌어요. 모르던 세상을 알게 된 느낌이었죠. 음악뿐 아니라 조명과 연출이 유기적으로 돌아가는 게 매력적이었어요.”

바렌보임은 옆집 할아버지처럼 언제든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보라고 친근하게 얘기하지만 리허설에 들어가면 180도 바뀌어 카리스마가 넘친다고 했다. “그런 그와 함께 일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떨리는 일이죠. 음악을 넘어 한 인간으로서도 굉장히 궁금했어요. 80세 가까운 나이지만 반짝반짝 빛나는 16세 소년의 눈을 갖고 있습니다. 판단이 엄청 빠르고 명민한 분이죠.”

이번에 호흡을 맞추는 자네티 경기필 음악감독과는 이지윤이 지난해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악장으로 처음 연주한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로 인연을 맺었다. “첫 오페라 연주여서 걱정이 많았는데 당시 지휘를 맡은 자네티가 리허설 이후 따로 시간을 내 질문에 답했다”며 “열정이 넘치는 그가 브람스 협주곡을 어떻게 해석할지 너무 궁금하다”고 말했다.

이지윤은 악장으로서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의 연주를 연간 60회 정도 이끈다. 180회의 연간 시즌 공연을 그를 포함한 3명의 악장이 소화한다. 악단의 1년 연주 일정이 미리 잡히는 만큼 나머지 시간에는 독주자로 무대에 선다. 독주자는 ‘자신만의 색’을 고민하지만 오케스트라는 다른 단원들과 어울려 비슷한 소리를 내는 데 집중해야 한다. 악장으로 오페라를 포함해 다양한 곡을 연주하면서 연주의 전체 흐름을 읽는 눈이 생겼다고 했다. 그는 “악장으로서 바이올린 선율뿐 아니라 성악가들의 분위기, 베토벤의 스타카토와 드뷔시의 스타카토가 어떻게 다른지도 귀 기울이게 됐다”고 말했다.

20대에 벌써 이룬 게 많지만 이지윤은 여전히 겸손하고 현실적이었다. “연습이 부족하거나 어떤 돌발 상황이 생겨도 ‘이 사람이 있으면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게 좋은 악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거창한 꿈보다 작은 목표들을 이뤄가며 계속 조금씩 전진하는 음악가가 되고 싶습니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