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산 자들》을 통해 한국사회의 현실을 균형감 있게 보여준 장강명 작가.  /민음사 제공
신작 《산 자들》을 통해 한국사회의 현실을 균형감 있게 보여준 장강명 작가. /민음사 제공
“흔히 우리 노동 문제를 갑과 을의 착취 구조나 갑질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실제론 을과 을끼리, 또는 을과 병끼리 싸우고 있습니다. 이런 부조리를 만들어내는 시스템을 향해 ‘이건 좀 아닌 거 같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기자 출신 ‘스타 작가’ 장강명 씨는 최근 출간한 연작소설 《산 자들》(민음사)의 집필 의도를 이렇게 설명했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만난 그는 “일말의 판타지적 요소를 배제하고 한국 사회에서 살면서 느끼는 을들의 비참함이나 비애, 죄책감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쓰려 했다”며 “‘이게 너랑 내가 살고 있는 사회다’라는 걸 현실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사회의 시스템 문제를 투영한 작품을 담담하면서도 날카롭게 그려 왔다. 중편소설 《한국이 싫어서》에선 한국 사회의 시스템에서 벗어나려는 사람을 그렸고, 논픽션 르포르타주 《당선, 합격, 계급》에선 각종 문학상과 공채가 어떻게 ‘좌절의 시스템’이 됐는지를 파고들었다. 이번에는 한국 사회의 노동과 경제 문제의 근원에 자리잡은 시스템에 이의를 제기했다. 신작은 출간 사흘 만에 초판 3000부가 완판되는 등 독자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팍팍한 경제·사회 현실을 사실주의 그림처럼 묘사"
《산 자들》은 2015년부터 올해까지 그가 여러 문예지에 발표한 단편 10편을 묶었다. 각 단편은 20대 취업과 비정규직, 해고, 구조조정, 골목상권 경쟁, 재건축·재개발에 따른 퇴출 등 한국 사회 노동 현실과 경제 구조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해고당하지 않아 공장에서 살아남아 ‘산 자’가 된 사람들은 “해고는 살인”이라고 외치지만 끝내 해고돼 ‘죽은 자’가 돼버린 옛 동료들과 충돌한다. 비정규직 직원은 퇴직 문제로 중간 관리직과 갈등하고, 한 상권 안에서 빵집 주인들은 생존을 위한 치킨게임을 벌인다. 마냥 선하거나 악한 사람은 없다. 여러 층위의 사람들을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감 있게 묘사한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모두 ‘을’끼리의 전쟁이다. 작가는 “현실에서 자본가는 절대악도 아니고 먼저 나서서 을과 치열하게 싸우지도 않는다”며 “을만 마냥 순결하게 억압만 당하는 게 아니라 을들끼리 서로 억압하고 감시하며 사는 게 지금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마치 하이퍼리얼리즘(극사실주의) 미술 작품을 보는 것처럼 실제 현실보다 더 진짜 같은 소설 속 한국 사회 모습은 책을 덮은 뒤에도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책에 실린 10편 중 상당수는 열린 결말이다. 그는 “확실한 결말을 위한 서사보다는 우리가 처한 현실이 어떤 비인간적인 구조인지를 한 폭의 회화처럼 한 장면으로 담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작가는 특히 비정규직과 취업난 등 20대 노동 문제에 집중했다. 그는 “지금의 20대가 경제적 약자라는 시대 정서가 무력감이나 혼란스러움, 열패감 등으로 구현되는 것 같아 자꾸만 눈에 밟혔다”고 했다. 단편 ‘대외활동의 신’이나 ‘카메라테스트’의 주인공들은 본인이 스스로를 착취하고 있다. 작가는 “자세히 보면 아무런 지위도 없는 20대를 온 사회가 착취하는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사회의 구조는 나보다 못 살면 무시하고 존엄을 해치기도 합니다. 사회안전망까지 없어 재취업하기 힘들어요. 그러니 벼랑 끝에 있다는 절박한 마음을 가진 ‘을’끼리 더욱 아귀다툼을 벌이는 거죠. 소설 속 주인공들도 모두 ‘이건 아닌 거 같은데’라는 불편한 마음을 갖고 있으면서도 뭘 해야 할 줄 모릅니다. 우리가 처한 비인간적인 시스템입니다.”

그는 차기작으로 ‘범죄 소설’을 집필 중이다. 처음 도전하는 범죄물에서도 한국 사회의 시스템을 꼬집겠다고 했다. “그동안 사람들을 억압하는 시스템에 대해 다뤘는데 반대쪽에서도 써보고 싶더라고요. 사실 우리 사회 시스템에서 가장 벗어나 있는 사람이 범죄자들이죠. 시스템에 벗어난 사람과 시스템을 지키려는 사람을 통해 우리 사회의 시스템을 다른 각도로 보여주고 싶어요. 장르적 재미도 주고 싶은데 반전을 만들기가 여간 쉽지 않네요. 하하.”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