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려도 기다려도 님 오지 않고/빨래 소리 물레 소리에 귀를 기울이네….”
지난 24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가곡 ‘기다리는 마음’을 한국어 가사로 부르고 있다.  /롯데콘서트홀 제공
지난 24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가곡 ‘기다리는 마음’을 한국어 가사로 부르고 있다. /롯데콘서트홀 제공
지난 24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 연주를 위해 무대에 걸어 나오는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BFO)’ 단원들의 손엔 한 장의 악보가 쥐어져 있었다. 뒤이어 헝가리 출신인 세계적 마에스트로 이반 피셔가 지휘봉과 함께 마이크를 들고 등장했다.

“우리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왔습니다. 최근 참담한 사고가 있었던 곳입니다. 이 사고로 많은 한국인이 희생됐습니다. 헝가리 국민과 부다페스트 시민들, 단원들과 저는 마음을 다해 유족의 슬픔에 공감하고 작은 위로라도 전하고 싶습니다.”

피셔가 준비한 애도곡은 한국 가곡 ‘기다리는 마음’. 모두 기립한 상태에서 바이올린과 첼로 일부 주자가 연주를 시작했다. 나머지 단원들은 피셔의 지휘 아래 직접 노래를 불렀다. 단원들에겐 발음조차 어려울 수 있는 한국어 가사로 비교적 정확하게 2절까지 불렀다. 사랑하는 사람을 간절하게 기다리는 마음을 담은 노래를 진중하게 부르는 이들의 목소리는 전석 매진으로 가득 찬 객석을 먹먹한 감동으로 울렸다.

본 공연은 베토벤의 에그몬트 서곡으로 막을 올렸다. 피셔의 손끝을 따라 나오는 폭발적이면서도 견고한 사운드는 객석을 압도했다. 무대는 베토벤이 남긴 시적이고 서정적인 피아노 협주곡 4번으로 이어졌다. 2015년 한국인 최초로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조성진이 BFO와 호흡을 맞췄다. 이번 공연으로 처음 합을 맞춰서인지 1악장에서 살짝 어긋나는 느낌도 들었지만 조성진 특유의 섬세한 감성과 피셔의 노련함이 이 불안을 덮었다. 한국 팬들의 열렬한 환호에 조성진은 1부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앙코르곡을 두 곡이나 들려줬다. 쇼팽의 프렐류드 4번과 브람스의 6개의 피아노 소품 2번에 협주곡으로 미처 다 보여주지 못한 자신의 매력을 담아냈다. 두 번째 앙코르곡을 연주할 때 피셔는 퇴장하지 않고 가장 뒷줄 바이올린 연주자 옆에 앉아 연주를 감상했다.

공연 후반부는 베토벤 교향곡 7번으로 채웠다. 넘치지 않게 균형 잡힌 피셔의 해석이 돋보였고 일사불란한 현악기는 묵직하게 다가왔다. 피셔는 관객의 기립박수에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1번을 앙코르곡으로 연주하는 것으로 답했다. 당초 오후 9시50분께 끝날 예정이던 공연은 오후 10시20분이 돼서야 끝났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