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옥경 서울옥션 부회장 겸 대표이사.
이옥경 서울옥션 부회장 겸 대표이사.
1997년 외환위기 당시, 미술시장은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그림 거래가 거의 끊겼기 때문이다. 1998년 미술품 경매회사 서울옥션의 등장은 초토화된 시장에 그나마 미세한 힘이 됐다. 첫 경매에서 근현대미술품과 고미술품 80여 점을 팔아 낙찰총액 3억원을 기록했다. 초라한 실적이었다. 하지만 그림 거래 투명성과 미술품 대중화의 첫발을 내디뎠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미술 경매문화의 불모지를 개척한 서울옥션은 그림 투자가 주식보다 낫다는 인식을 심어주며 꾸준히 성장했다. 2008년 코스닥시장 상장과 함께 ‘미술한류’ 개척의 전진기지로 홍콩에 법인을 세웠다. 작년 3월에는 홍콩 센트럴에 있는 에이치퀸스 빌딩 11층에 상설전시장 ‘SA+’를 개관했다.

최근에는 자회사 서울옥션 블루를 통해 해외 경매 대행 서비스와 온라인 스토어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서울옥션은 지난 20년 동안 미술품 2만6000여 점(낙찰총액 9100억원)을 거래하며 국내 경매시장을 이끌었다. 작년에는 낙찰총액 1286억원을 기록해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올렸다.

지상 8층의 강남센터 개관

창사 20년을 갓 넘은 서울옥션은 지난 18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강남센터를 개관해 미술시장 저변 확대에 나서며 제2 성장기에 들어갔다. 강남센터는 지하 5층~지상 8층, 연면적 4975㎡ 규모로 경매장, 전시공간, 레스토랑, 이벤트 홀 등을 갖췄다. 프랑스 건축가 빌모트가 설계와 디자인을 맡아 심미적이고 진취적인 느낌을 살렸다. 서울 평창동 기존 사옥과는 별개로 연 4회 메이저 경매를 포함한 온라인 경매와 기획전, 아카데미교육 공간으로 운영된다. 주변에 코리아나미술관, 화장박물관, 호림박물관, 송은미술관, 에르메스아뜰리에, K옥션 등이 자리하고 있어 강남 아트밸리의 랜드마크 역할도 기대된다.

이옥경 부회장 겸 대표는 “기존 고객뿐 아니라 다양해지는 잠재 고객의 접근성을 확보하면서 미술시장 저변 확대에 역점을 둘 것”이라며 “전시장과 경매장 외 이벤트 홀 등을 설치해 다양한 사람이 일상에서 미술을 향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려고 한다”고 말했다.
서울옥션 강남시대 개막…"올 경매 낙찰액 1500억 찍겠다"
서울옥션은 강남센터 개관을 계기로 강남권 부유층 공략에 고삐를 죈다. 지난해 국내에서 유통한 미술품 약 5000억원 규모 중 30~40%가 이곳에서 거래됐다. 이 때문에 신흥 부자와 연예인, 문화예술인 등 트렌드 세터들의 미술품 투자심리를 마케팅에 적극 활용한다는 전략이다.

서울옥션은 또 온라인 경매를 수시로 열어 아트테크에 열광하는 20~50대 미술애호가를 끌어들이는 데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점당 1000만원 미만의 중저가 미술품 소장을 원하는 직장인 주부 학생 등 수요층이 증가하고 있어서다. 이 대표는 “올해 온라인 경매 회원 수 목표를 현재(5만 명)보다 두 배가량 늘린 10만 명으로 잡았다”고 했다.

첫 온라인 경매에 171점 출품

강남센터는 온라인 경매와 기획 전시로 포문을 열었다. ‘나도 컬렉터가 될 수 있다’는 취지로 오는 24일까지 진행하는 온라인 경매 ‘마이 퍼스트 컬렉션(My First Collection)’에는 파블로 피카소, 이우환, 사석원 등 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 171점(약 20억원)을 내놓았다. 응찰가 0원부터 시작하는 고미술품 무가 경매와 최소 30만원부터 시작하는 경매로 새내기 컬렉터의 ‘미술 사랑’을 북돋을 방침이다.

지난 18일 개막해 다음달 20일까지 펼치는 ‘분청사기, 현대미술을 만나다’전은 조선시대 분청사기와 추상화를 나란히 배치해 한국의 미학적 가치에 주목했다. 미술애호가를 위한 아카데미 행사도 다음달 10일부터 닷새 동안 열린다.

이 대표는 “강남권 고객의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아온 기존 평창동 본사의 취약점을 보완했다”며 “앞으로 강남센터와 평창동 본사, 홍콩 SA+, 부산점을 사각 편대로 삼아 연간 낙찰총액 1500억원 시대를 열겠다”고 말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