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입자들의 강매경제가 잇따르고 있는 경기 화성 동탄1신도시의 ‘푸른마을모아미래도’ 아파트 단지. 네이버 거리뷰 캡처
최근 세입자들의 강매경제가 잇따르고 있는 경기 화성 동탄1신도시의 ‘푸른마을모아미래도’ 아파트 단지. 네이버 거리뷰 캡처
지난해 봄 한 갭투자자의 아파트 60여 가구가 무더기로 경매에 나왔던 경기 화성 동탄1신도시에서 다시 경매가 속출하고 있다. 이번에도 같은 소유자의 물건이다. 당시엔 소유자가 세입자들에게 피해를 떠넘기기 위해 고의경매를 신청했다. 이번엔 세입자들이 보증금을 날리지 않기 위해 다시 강제경매를 신청했다. 집값이 떨어지면 고의경매로 일괄 정리하는 이 갭투자자 소유 주택은 경기와 충청권을 통틀어 300채가량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수면 아래 있던 아내 명의 주택들도 하나둘 드러나면서 보유 주택수가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경매로 손실 최소화 나서

14일 수원지방법원에 따르면 감정가 2억4400만원의 화성 능동 ‘푸른마을모아미래도’ 아파트가 지난 9일 첫 경매에서 유찰됐다. 이 아파트 세입자 김모 씨가 집주인 A씨를 상대로 강제경매를 진행한 물건이다. 다음 달 2차 기일엔 최저입찰가격이 1억7080만원으로 내려가지만 아무도 입찰하지 않을 가능성 높다. 낙찰자가 등기부상 최선순위인 김 씨의 전세보증금 2억3800만원을 떠안아야 해서다. 김 씨는 이때 낙찰받은 뒤 집을 매도할 계획이다. 김 씨가 집을 경매로 넣은 것은 집주인인 A씨가 전세보증금을 돌려줄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어서다. 경매를 통해 매입한 뒤 다른 사람에게 매도해 보증금을 회수키로 했다.

다른 집의 세입자인 이모 씨도 사정은 비슷하다. 그도 A씨의 임차인이다. 강제경매로 넣은 집을 다음 입찰에서 낙찰받기 위해 기다리는 중이다. 이 씨는 “몇 년 전 분양받은 집에 최근 입주했다”며 “세들어 살던 집마저 떠안게 돼 졸지에 2주택자가 됐다”고 하소연했다.

A씨는 작년 봄 집을 경매로 넣으면서 ”전세 보증금을 날릴 수도 있으니 차라리 매수하라”고 세입자들을 회유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마저도 자신이 샀던 가격에 웃돈을 붙여 매도가를 불렀다. 지모 씨의 경우 자신의 보증금 2억4500만원에다 500만원을 더 얹어주고 집을 떠안았다. 경매로 가면 자칫 보증금을 날릴지도 모른다는 불안에서다. 그는 “이사 계획이 다 어그러졌다”고 푸념했다.
지난해 임의경매가 기각된 뒤 세입자들이 보증금을 돌려받기 위해 강제경매를 넣고 있지만 1회 입찰에서 대부분 유찰됐다. 탱크옥션 캡처
지난해 임의경매가 기각된 뒤 세입자들이 보증금을 돌려받기 위해 강제경매를 넣고 있지만 1회 입찰에서 대부분 유찰됐다. 탱크옥션 캡처
최근 동탄에선 이 같은 일이 흔하다. 지난해 봄 A씨 소유의 아파트 59채가 한꺼번에 경매로 나왔던 후폭풍이다. 전세를 끼고 1000만~2000만원 정도의 갭투자를 하던 A씨는 동탄2신도시 입주로 집값이 떨어지자 일괄 경매 처분을 선택했다. 아버지와 어머니, 처형 등 친인척 이름으로 후순위 근저당을 설정한 뒤 경매에 부친 것이다. 근저당을 설정한 지 보름 만에 경매에 넘긴 경우도 19건이다. 전형적인 고의경매 수법이다.

이 같은 전략을 펴는 것은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매매가격 2억인 집을 전세보증금 1억9000만원을 끼고 매입했다고 가정해 보자. 2년 뒤 집값이 1억7000만원으로 떨어졌다면 A씨는 거래비용을 제외하고 3000만원을 손해보게 된다. 그러나 경매 등으로 위협해 이 집을 세입자에게 떠넘기면 손실을 1000만원으로 줄일 수 있다. 자신이 투자한 돈 1000만원만 날리면 되는 것이다. 세입자에게 2000만원의 손실을 떠넘길 수 있는 셈이다. 세입자에게 웃돈까지 받으면 손실을 더 줄일 수 있다.

이런 경우 선순위 임차인이 있어 입찰에 참가할 투자자는 없다. 임차인들의 선택지는 사실상 집을 떠안는 게 유일하다. 방법이 매매인지 경락인지가 다를 뿐이다. 아니라면 A씨가 보증금을 돌려줄 때까지 기약없이 눌러앉아 살아야 해서다.

◆무잉여에 발목 잡혀

A씨가 고의경매로 넘겼던 59건 가운데 대부분은 무잉여 기각 처리됐다. 법원 경매에선 경매 신청자가 배당 받아갈 돈이 없으면 경매를 중단한다. 법원이 무잉여를 이유로 기각처리하는 것이다. 고의 경매를 신청한 A씨 아버지 등은 후순위고 세입자가 선순위다. 설사 낙찰된다고 하더라도 세입자가 먼저 배당받고 나면 A씨 아버지 등은 배당받을 돈이 없어 무잉여다. 법원에 의해 A씨의 시도가 일단 좌절된 것이다.

◆세입자들이 강제경매

결국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들이 지급명령을 통해 강제경매를 진행하는 상황으로 전개됐다. 집코노미가 이들 주택의 등기부등본을 전수조사한 결과 절반에 가까운 26건이 강제경매 절차를 밟았다. 이미 경매가 끝난 8건 가운데 5건은 결국 임차인들이 낙찰받았다. 앞으로 진행될 나머지 경매도 사실상 임차인들이 떠안게 될 전망이다. A씨의 회유에 경매까지 가지 않고 아예 임차인이 매입한 사례도 많다. 앞으로 경매에 나올 가능성이 높은 A씨 소유 집도 12채나 된다. 동탄에서만 71가구가 비슷한 피해를 입은 셈이다.

세입자들이 사지로 내몰리는 동안 정작 A씨는 나름 소득을 올렸다. 임차인에게 집을 되판 매각대금이나 제3자의 경매 고가낙찰을 통해 벌어들인 돈만 1억8000만원가량이다. 강은현 EH경매연구소 대표는 “경매의 선순위 보증금을 제한 돈은 채권자에게 배당되지만 이 경우 가족 간 채무여서 사실상 A씨의 소득이나 다름없다”고 설명했다.
B씨 소유 아파트 경매가 기각되자 남편인 A씨의 어머니가 이를 최근 되샀다. A씨의 어머니는 동탄 경매에선 채권자로 등장했던 인물이다. 해당 아파트 등기부등본
B씨 소유 아파트 경매가 기각되자 남편인 A씨의 어머니가 이를 최근 되샀다. A씨의 어머니는 동탄 경매에선 채권자로 등장했던 인물이다. 해당 아파트 등기부등본
◆매매가<보증금…“전부 300채”

이 같은 경매는 동탄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최근 충남 천안에서 비슷한 경매가 여러 건 진행 중이다. 이달 기일을 앞두고 있는 것만 3건이다. 천안에선 A씨의 아내인 B씨 명의로도 경매가 진행 중이다. 부부가 아예 같은 아파트를 공략하거나 빌라 한 채를 통으로 사들이다시피 한 사례도 있다. B씨의 아파트 경매가 기각되거나 취하된 뒤엔 A씨 어머니가 이를 되사는 경우도 있었다. 여러 채의 아파트를 한날 한시에 같은 가격으로 되샀다. A씨의 어머니는 동탄 경매에서 채권자로 등장했던 인물이다. 일가족이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현지 중개업소들에 따르면 A씨가 천안에 나타난 건 2008년께다. 수입차 딜러였던 그는 갭 투자 강의를 들은 뒤 저렴한 빌라부터 야금야금 사모으면서 본격적인 투자에 나섰다. 자신이 매수한 가격보다 전세보증금을 높게 맞추는 등 사실상 돈을 한 푼도 들이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중개업자의 조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와 오랫동안 거래했다는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A씨 명의 주택이 천안에만 140채가량 될 것”이라며 “충청과 대전 등을 모두 합쳐 270채 정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차명 소유 부동산을 모두 합치면 300채가 넘을 것이란 이야기도 나온다. 이들 주택 역시 집값이 떨어지면 고의경매로 넘겨 임차인들을 울린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천안의 다른 중개업소 관계자는 “세입자들의 집안이 풍비박산 나는 등 피해가 커진 탓에 여기선 그와 거래하려는 중개업소가 거의 없다”며 “최근엔 집을 슬슬 법인 명의로 돌리는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A씨 부부가 동탄으로 무대를 옮긴 건 2012년부터다. 2014년엔 40채 이상 집중적으로 사들였다. 아파트 한 동에서 6채씩 사 모으는 경우도 있었다. 윗집과 아랫집 또는 옆집 이웃끼리 같은 집주인을 두는 경우도 많았다. 경계를 맞댄 단지인 ‘푸른마을모아미래도’와 ‘푸른마을신일해피트리’는 42채를 사들였다. 단지 내 중개업소 몇 곳과 집중적으로 거래를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가운데 한 중개업소는 고의경매로 논란이 불거지자 업장을 양도하고 지난해부터 종적을 감췄다.

[집코노미] 궁여지책…300채 '동탄 갭투자자' 집 대거 경매 신청
A씨는 주로 2억원대 초반 소형 면적대를 많이 샀다. 전세를 끼면 실제 매입가를 극단적으로 낮출 수 있어서다. ‘다은마을월드메르디앙반도유보라’ 전용면적 59㎡의 경우 2014년 2억7300만원에 매수했는데 2년 뒤 2억9000만원에 세입자를 들이면서 투자금을 모두 회수했다. 매매가격과 전세가격의 갭이 큰 것도 5000만원을 넘지 않았다. 이마저도 전용 100㎡를 넘는 대형일 때만 그렇다. 그가 동탄과 천안 일대에서 사들인 집 가운데 매수금액과 임차보증금을 확인할 수 있는 79채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평균 갭은 오히려 마이너스다. 매수가격 대비 임차보증금을 한 채당 190만원씩은 높여 받았다. 매수시점 기준 시가총액은 170억원인데 현재 보증금 규모는 172억원으로 이를 넘어섰다.

투자 방법이 남다르다는 게 A씨를 지켜본 중개업소들의 의견이다. 갭투자는 단기 수급을 봐야하는 게 원칙인데 그는 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아서다. 공급이 일시에 몰리면 매매가와 전세가가 떨어져 치명상을 입는 게 갭투자의 위험 요인이다. 세입자의 보증금을 돌려줄 돈이 없어 깡통주택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A씨는 처음부터 고의경매를 활용할 목적으로 마구잡이로 사들였다. 가격이 제대로 오른 물건은 정상매매로 팔아치우고 가격이 떨어지면 경매로 해결하는 식이다. 현재 기일이 다가오고 있거나 개시일을 앞둔 경매만 24건이다.

◆“경매 악용…임차인 보호 개선돼야”

전문가들은 투자 실패에 대한 출구전략으로 경매를 활용한 나쁜 사례라고 지적한다. 자신의 피해를 세입자들에게 그대로 전가해서다. 정충진 법무법인 열린 대표변호사는 “보증금반환소송을 하더라도 집주인은 재산이 없다고 버티는 데다 경매에서 깡통 아파트가 보증금보다 높은 가격에 낙찰될 가능성은 낮다”며 “집주인이 사실상 강매를 하고 있더라도 마땅히 처벌할 방법 또한 없는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사례가 A씨의 경우에만 그치리란 보장도 없다. 선순위 임차인을 끼고 있는 모든 투자자는 고의경매를 악용할 수 있어서다. 일부 경매학원은 A씨의 투자방법이 절대 실패하지 않는 투자라고 호도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경매 투자자는 “경매 업계에선 지인들과 형식적인 돈 거래를 한 뒤 근저당권이 오고간 것처럼 꾸며 고의경매를 진행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임대차계약 과정에서 세입자가 얻는 정보가 비대칭적인 만큼 이를 투명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강은현 EH경매연구소 대표는 “임대인의 경제능력이나 다주택 상태 등을 볼 수 있도록 개선해 최소한 블라인드 상황에서 임대차계약이 이뤄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차선으로는 임의규정인 전세보증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