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쿠바 미사일 위기'를 통해 바라본 한반도 비핵화
‘쿠바는 돈키호테처럼 벼랑 끝 전술을 즐겼다’ ‘카스트로는 미국의 쿠바 침공이 필연적이라는 종말과 운명론에 빠져 핵전쟁을 부추기다가 실익도 못 챙기고 고립됐다’ ‘쿠바는 미국과 국교 정상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고를 쳤다. 빅딜이 거의 이뤄질 만하면 혁명과 무기를 수출해 양국 관계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앞선 문장에 있는 ‘쿠바’나 ‘카스트로’ 대신 ‘북한’을 넣으면 어떨까. 《예정된 위기》는 쿠바를 통해 북한을 보고 미국을 예측한다.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인 저자는 미국 정치 전문가다. 저자는 “쿠바의 미사일 위기를 재조명하는 일은 곧 한반도 위기를 새로운 프리즘으로 들여다보는 작업”이라며 “카리브해에서 진행되는 위기가 한반도에서 그대로 재현되지는 않겠지만 그 교훈은 되새겨야 한다”고 책을 쓴 이유를 설명한다.

쿠바 미사일 위기는 1962년 10월16일부터 10월28일까지 13일간 소련이 쿠바에 핵미사일을 배치한 것을 둘러싸고 미국과 핵전쟁 직전까지 치달았던 상황을 말한다. 소련의 쿠바 내 핵미사일 기지 건설에 대해 보고받은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긴급안보회의를 소집하고 해상봉쇄를 결정했다. 그럼에도 핵무기를 탑재한 것으로 추정되는 소련 선박이 쿠바에 접근했다. 3차 세계대전 발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와중에 극적인 합의가 이뤄졌다. 미국은 쿠바를 침공하지 않고 소련은 미사일 기지를 폐쇄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미국과 쿠바 간 본격적인 전쟁 위기가 시작된 것은 ‘13일간의 쿠바 미사일 위기 직후’라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책은 그 13일간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인지, 쿠바 위기 당시 분란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었는지, 쿠바와 미국의 평화협상은 왜 시간 끌기로 귀결됐는지 차분하게 파고든다. 내내 쿠바 미사일 위기에 얽힌 사연을 추적해가지만 결국 찾고자 한 것은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를 향한 길이다. 각 장의 끝에는 ‘위기의 본질을 이해하려면 뿌리와 맥락을 알아야 한다’ ‘위기 해결 직후에도 위기 관리가 필요하다’ ‘국가 간 위기는 불완전한 정보에 기반한 상호 오인의 무덤이다’ 등 ‘한반도 평화를 위한 21가지 교훈’을 차례로 서술한다.

저자는 버락 오바마 미국 정부가 사실상 북한 문제를 방치했다고 평가한다. 오바마 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정부에 인수인계하는 단계에서야 북한 문제가 심각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를 두고 저자는 “미국 본토나 전략적 구도에 가해지는 현실적 위협을 느껴야 비로소 협상 국면에 들어가는 미국 정부의 낯익은 ‘불편한 진실’을 확인할 수 있다”고 언급한다. 로버트 리트바크 우드로윌슨센터 수석부회장은 한반도 위기를 ‘느리게 진행되는 쿠바 미사일 위기’라고 했다. ‘불량국가’가 핵미사일로 미국 본토를 위협했다는 점에서 쿠바와 북한은 공통적이다. 그럼에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다른 점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쏘면서도 동시에 대화하자는 신호를 보냈다는 것이다.

쉽지 않은 내용이지만 명료한 문장이 이해를 돕는다. 다른 배경 지식 없이도 쿠바 위기 당시의 긴박했던 순간과 합의 이면에 깔린 배경들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대북 강경책이나 친화책이라는 쏠린 시각을 넘어 새로운 각도에서 한반도를 둘러싼 다툼을 조명해볼 수 있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