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번에 두 번이나 분단의 선을 넘어 여기 남쪽으로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지척인 평양과 서울 간의 거리가 실제와 달리 너무도 먼 것처럼 느껴지는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북한 삼지연관현악단이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방문해 두 번째 공연을 한 11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공연이 끝나갈 무렵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이 무대에 깜짝 등장했다. 현 단장은 “강릉에서 목감기가 걸려 상태가 안 좋지만 그래도 단장인 제 체면을 봐서 다른 가수들보다 조금 더 크게 박수 부탁드린다”며 북한 가요 ‘백두와 한나(북한에서 한라산을 이르는 말)는 내 조국’을 불렀다. 악단의 단장이 직접 노래를 한 건 이례적이다. 현 단장은 “백두에서 조국통일 해맞이 하고 한나에서 통일만세 우리 함께 부르자”라는 내용의 가사를 불렀다. 악단과 여성 중창단원들이 연주와 코러스로 뒷받침했다.

객석의 탄성은 마지막 곡에서 한 번 더 터졌다. 여성 중창단원의 손짓 신호에 맞춰 걸그룹 소녀시대의 멤버 서현이 무대로 등장한 것. 서현과 단원들은 남북한에서 모두 잘 알려진 노래 ‘우리의 소원’을 불렀다. 익숙한 멜로디가 나오자 관객 다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노래를 따라 불렀다. 서현과 단원들은 이어서 북한 가요 ‘다시 만납시다’를 불렀다. “꿈과 같이 만났다 우리 헤어져 가도 해와 별이 찬란한 통일의 날 다시 만나자”라는 내용의 노래다. 서현은 노래를 부르며 단원들과 손을 잡거나 다정하게 마주보기도 했다. 공연이 끝난 뒤 기립박수가 이어진 가운데 서현과 단원들은 포옹하며 오랫동안 대화를 나눴다.

삼지연관현악단은 이날 서양 대중음악도 연주했다. 미국 작곡가 스티븐 포스터의 ‘올드 블랙 조(Old Black Joe)’가 ‘흑인 영감 조’로, 영국 가수 메리 홉킨의 ‘도즈 워 더 데이스(Those were the Days)’가 ‘아득히 먼 길’로 소개됐다. 나머지는 지난 9일 강원 강릉아트센터에서 한 첫 번째 공연과 비슷했다. 이선희의 ‘J에게’ 등 한국 가요, 조아키노 로시니의 ‘빌헬름텔 서곡’ 등 서양 고전음악, ‘반갑습니다’ 등 북한 가요를 불렀다. 오후 8시40분께 공연이 끝난 뒤 현 단장과 단원들은 무대 위에서 5분 이상 머물면서 객석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북한 예술단이 남한에서 공연을 한 건 2002년 서울에서 열린 8·15 민족통일대회 이후 15년6개월 만이다. 이번 공연에서 삼지연관현악단은 정치적 논란을 야기할 수 있는 곡을 자제한 흔적이 역력했다. 현 단장이 이끈 모란봉악단이 2015년 첫 해외 공연을 위해 찾은 중국 베이징에서 레퍼토리로 갈등을 빚어 공연을 취소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전영선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연구교수는 이번 공연에 대해 “무대 레퍼토리 구성에서 민족적 정서를 상당히 고려했다”고 분석했다.

조남규 한국무용협회 이사장은 “예전보다 수준이 높아지고 서구화됐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평가했다. 악단은 12일 오전 경의선 육로를 통해 북한으로 돌아간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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