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션강요ㆍ바가지쇼핑->관광한국 잠재력 훼손

업계 자정노력 시급..정부도 묘안 찾아라

「#1. 중국인 L씨는 지난 4월 패키지 상품을 이용해 한국을 찾았다 씁쓸한 경험을 했다.

가이드가 안내한 인삼가게에서 유명상표의 제품을 구입했는데 공항에서 발견한 같은 상품에는 훨씬 낮은 가격표가 붙어있었기 때문이다.

#2. 중국인 J씨는 지난 3월 한국 단체관광중 황당한 경험을 했다.

비용을 추가로 내야하는 비무장지대(DMZ) 관광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하자 가이드가 산 밑 도로에 차를 세우더니 불참자는 모두 내려라고 했기 때문이다.

외딴 도로에서 몇 시간을 기다릴 수도 없어 어쩔 수 없이 돈을 내고 관광에 참여해야 했다.


중국인 대상의 저가 방한상품들이 한국의 이미지에 먹칠을 하고 있다.

한류 붐을 타고 들뜬 마음에 한국을 찾았던 중국인 관광객들은 옵션관광을 강요당하고 `바가지 쇼핑'에 내몰리면서 `다시는 한국에 오지 않겠다'며 차갑게 발길을 돌리고 있다.

마치 우리 국민들이 저가의 동남아 패키지상품을 이용했을 때와 비슷한 상황을 중국인 관광객들이 우리나라에서 겪고 있는 셈이다.

◇ 항공료만 내면 된다.

.한국관광은 '싸구려'
"숙박.음식.관광비용은 바가지 쇼핑으로 건진다"

저가 방한상품들은 주로 중국과 대만 등 중화권에서 판매된다.

한류 붐을 타고 한국을 찾으려는 중화권 관광객의 규모는 늘어나고 있지만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여행사들이 가격을 무기로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관광공사가 지난달 중국에서 판매되는 방한 여행상품을 조사한 결과 총 135개 상품중 105개(77.8%)가 저가상품이었다.

저가상품은 중가상품보다 품질이 낮은 것으로, 중가상품의 기준은 ▲숙박 특 2급 호텔 ▲지정쇼핑 4회 이하(4박5일 기준) ▲노옵션(No Option) 등이다.

저가상품들은 대부분 중국에서 모객한 중국여행사들이 한국에서 관광객을 안내하는 여행사들에게 지급하는 비용(랜드피)을 아껴 가격을 낮추는데, 아예 랜드피가 전혀 없는 상품마저 팔리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상하이에서 판매되는 한 상품(4박5일)의 경우 가격이 3천100위안(한화 약 55만4천원)인데, 항공료(2천800위안)와 비자료(170위안), 모객한 중국여행사 이윤(130위안) 등으로만 구성됐을 뿐 한국에서 머무는 동안에 발생하는 관광비용은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

따라서 한국에서 중국 단체관광객을 안내하는 여행사는 숙박비와 식비, 입장료 등으로 지불되는 비용을 만회하고 이윤까지 남기기 위해 옵션관광을 강요하고 바가지 쇼핑에 관광객들을 내모는 것이다.

중국 관광객들이 많이 구매하는 인삼의 경우, 판매가격 25만원 중 여행사가 받는 수수료가 15만원에 달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삼 가격의 60%가 손님을 데려온 여행사에 수수료 명목으로 지급되는 셈이다.

문화체육관광부 황성운 국제관광과장은 "바가지 쇼핑과 무리한 옵션관광은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떨어뜨려 관광객 감소로 이어지고 여행사들은 관광객 모집을 늘리려고 더욱 낮은 가격의 상품을 내놓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관광공사가 2007년 중국소비자를 대상으로 우리나라와 싱가포르, 유럽, 말레이시아, 일본, 태국, 마카오, 베트남, 홍콩, 대양주 등 10개 지역에 대한 여행만족도 조사를 실시한 결과, 우리나라가 최하위를 기록했다.

◇ 업계 자정노력..효과는 불투명
문제는 정부도 이같은 문제점들을 잘 알고 있지만 막을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바가지 관광'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과도한 수수료는 쇼핑센터와 여행사 간의 사적인 계약에 의한 것으로 규제할 마땅할 근거가 부족하다.

황성운 과장은 "정부가 나서 수수료를 일괄적으로 낮추도록 강제했다가는 담합을 종용했다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면서 "업계가 스스로 문제점을 인식하고 자정노력을 기울이는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입장을 의식한 여행업계도 자정 노력에 나서고 있다.

한국일반여행업협회(KATA)는 오는 15일부터 전국 인삼판매점을 대상으로 인삼제품의 여행사 수수료를 판매가의 40% 미만으로 적용하기로 했다.

KATA 조규석 실장은 "쇼핑센터에서 여행사에게 소정의 수수료를 지급하는 것은 전 세계 어디에나 있는 관광패턴"이라며 "한국관광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자는 차원에서 인삼제품의 여행사 수수료를 낮추기로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업계 차원의 자율 결의일 뿐 강제할 수단이 있는 것은 아니어서 얼마나 효과가 있을 지는 미지수다.

특히 중국의 저가 방한상품은 우리의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중국 여행사들과도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우려도 있다.

한 중국전담여행사 관계자는 "쇼핑수수료를 낮추면 여행상품 가격을 올려야 수지가 맞는다"면서 "솔직히 중국의 여행사들이 이에 협조할지 의문이며 당장은 협조하더라도 조금 지나면 다시 과거와 같은 저가상품이 등장하지 않을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가격이 아니라 품질로 경쟁한다는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면서 "그래야 한국이 또 찾고 싶은 관광지가 되고 시장이 커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업계의 자정 분위기를 독려할 `당근'과 `채찍'을 모두 꺼내들었다.

문화부는 건전한 관광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모범적인 여행상품이나 쇼핑센터에 대해 인증제를 실시할 방침이다.

또 과도한 옵션관광 등으로 여행질서를 현저히 문란하게 했을 경우에는 중국 전담여행사 지정을 취소할 계획이다.

문화부 관계자는 "중국인 관광객을 가장한 `암행 모니터링' 등을 통해 중국인의 방한관광 실태를 지속적으로 파악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정진 기자 transi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