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 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건 초등학교 때 앉았던 작은 네모 의자다. 반질반질 윤이 나던,지금 보면 너무나 작고 앙증맞은 느낌을 준다. 하지만 빈 의자를 모티브로 회화와 설치의 경계를 넘나드는 손진아씨(42)에게 빈 의자는 인간의 욕망과 근원적인 욕구를 상징하는 대상이다.

숙명여대와 미국 뉴욕주립대 대학원을 졸업한 손씨는 의자를 바라보고,의자 앞에 앉은 인물들을 통해 인간의 욕망,권력,자리매김을 이야기해 온 작가. 그는 욕망으로 부대끼는 것이 인생사지만 그 욕망은 마치 빈 손이나 빈 의자가 상징하듯 결코 채워질 수 없는 이율배반적인 것임을 작품으로 보여준다. 의자 표면의 사각 체스판 무늬와 화려한 꽃 이미지는 수시로 변하는 욕망의 허무함을 의미한다.

손씨의 개인전이 서울 관훈동 아트싸이드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 주제는 '나는 거기에 없다'.점점 마음의 눈이 멀어지는 현대인들에게 본질의 의미를 되묻는다는 의미다. 이번 전시에는 빈 의자와 말없음표로 부재와 침묵을 표현한 회화와 섬유강화플라스틱(FRP),청동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한 설치 작업 20여점이 걸려 있다.

그는 "작품 속 의자에는 인간의 마음에 내재된 초현실적 무의식,실존,소통,자아,나르시즘 등이 앉아 있다"고 설명했다. 옷을 소재로 작품을 만들던 그는 1992년 뉴욕주립대 유학 시절 빈티지 창고에서 본 앤티크 의자에 '필(feel)'이 꽂혀 1995년 귀국 후 본격적으로 의자 작업에 매달렸다. 디자인,생활,역사성이 담긴 의자에 소통과 자아를 마음껏 색칠했다는 것.

그래서 그의 작품 중에는 의자들이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거나 탑을 쌓아 올리 듯 묘사된 화면도 있다. 처음에는 하나의 의자로 자화상의 의미를 담아내다가 의자를 소재로 옴니버스식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단계로 발전했다. 자신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묘사한 '상황표현'과 '상징적 관계' 시리즈는 이렇게 태어난 작품들이다.

손씨는 2004년 조각설치를 배우기 위해 다시 뉴욕주립대 대학원에 입학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 미국 조각가 주디 파프의 어시스턴트로 일하면서 1년6개월 동안 철 다루는 법을 비롯해 락스로 색깔 내는 방법,용접,그라인드 작업,오페라 무대 세팅작업 등 설치미술에 대한 모든 것을 어깨 너머로 배운 것이 내겐 큰 행운"이라고 말했다. 29일까지.(02)725-1020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