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농촌 마을에 봄햇살이 따사롭다. 왼쪽 산밑에서 나와 오른편의 야트막한 기슭으로 휘돌아나가는 길이 나직하게 이어지고,드문드문 늘어선 소나무 사이엔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정감 어린 집과 담장,분홍빛 간접조명처럼 뒤안을 환하게 껴안은 도화(桃花)의 품이 화사하다. 먼 산 중턱과 이웃 마을의 부드러운 지붕 위에도 온통 춘색(春色)이 만연하다. 그야말로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소정(小亭) 변관식(卞寬植,1899~1976) 화백의 30주기를 맞아 다시 공개된 '전가춘색(田家春色)'(1963년,종이에 수묵담채,40×197.5cm). 온 천지의 봄기운을 마음껏 펼쳐 보여주는 이 작품은 우리 산천의 아름다움을 품격있게 그려낸 소정의 보폭만큼 넓고도 깊다.


소정의 30주기 회고전 '소정,길에서 무릉도원을 만나다'가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그동안 금강산 그림으로 특징지워졌던 소정의 예술세계를 농촌 풍경과 근대도시 풍경,도화경(桃花景)의 영역으로 넓히면서 새로운 시각으로 재평가한 기획전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 마련한 이번 전시에서는 '진양풍경' 등 미공개작 15점을 포함해 소정의 대표작 80점을 만날 수 있다. 스케치 15점과 피난 시절 부산에서 제작한 도기화 4점도 선보이고 있다.


그림들은 소정이 길을 떠나 이상향에 도달하는 과정에 맞춰 '길 떠나기''길을 묻다''무릉도원을 보다'의 3부분으로 나뉘어 전시돼 있다. 제1회 조선미술전람회 출품작인 '촉산행려'(1922년) 등 초기의 대작부터 방황과 모색기인 중기의 '영도교'(1948년),한국적 산수의 이상향을 완성하는 시기의 '내금강 진주담'(1960년) 등의 진작까지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다.


특히 부산 근대화의 상징인 영도다리를 소재로 한 '영도교'는 소정이 한국적 회화를 정립하기 위해 방황하던 시절의 작품으로 동아대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가 일반에 처음 공개했다. 눈쌓인 산야를 그린 '설경' 또한 역작이다.


전시는 5월7일까지 계속된다.


관람료 일반 3000원,중·고생 2000원,초등·유치원생 1000원.


(02)2022-0600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