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고깃집들은 얼마전 모방송사에서 방영한 채식관련 프로그램때문에 사람들의 발길이 줄어 울상이다. 이에반해 채식전문식당은 사상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육식이 무조건 나쁜 게 아니고 채식이라고 모두 좋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대량사육으로 얻어진 고기와 마찬가지로 대량재배된 채소 역시 비료와 농약으로 인한 문제점이 없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요즘 번창하고 있는 채식전문점들이 대부분 맛보다는 채식 그 자체에만 의미를 두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심한 경우 기존 한정식이나 뷔페차림에서 육류.어류를 뺀채로 가격만 조금 싸게 받으면서 채식전문점이라고 주장하는곳도 있다. 극단적인 채식이 몸에 해롭다는 주장 때문이 아니더라도 이런 류의 그릇된 채식 열풍은 결국 일과성으로 끝나기가 쉽다. 오래전부터 나름대로의 경쟁력을 갖추고 채식요리들을 서비스해온 채식전문점들을 알아보자. 산촌(인사동 사거리 부근.02-735-0312)=누가 뭐라고 해도 채식요리의 정점에는 산촌이 있다. 채식이라면 좀 특이한 사람이나 먹는 걸로 여기던 80년대부터 사찰음식이란 이름으로 꾸준히 외길을 걸어와 이제는 국제적인 명소가 되었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1만7천원짜리 산촌정식을 먹어보면 최근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채식전문점들과의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다. 전채격인 들깨죽과 빙떡,나물류는 특히 입맛이 없는 사람들에게 좋다. 뒤이어 나오는 전과 튀김을 맛보면 왜 이집이 유명세를 타고 있는지를 실감할 수 있다. 특히 쑥튀김의 입안 가득히 퍼져나가는 향기와 배튀김의 아삭거리면서 향긋한 맛은 채식도 잘만 요리하면 훌륭한 요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승려들이 즐긴다는 희귀한 고수나물까지 먹고 나면 어느새 목기그릇들이 전부 비워졌음을 알게 된다. 된장찌개는 약간 싱거운 감이 있는데 얼큰한 취향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느낌을 줄 수도 있다. 들풀(대학로 혜화역 부근.02-745-9383)=채식전문점이라기보다는 채식위주의 한정식 집이다. 산나물과 버섯 전문이라는데 가평의 직영농장에서 가져온다는 장류가 더 훌륭하다. 화학조미료를 첨가하지 않아 모든 음식이 약간 싱거운 듯한 느낌을 주지만 재료 자체의 맛은 더 살아있다. 정식은 1만5천원부터. 점심때만 9천원짜리 약밥정식을 낸다. 여기에 직접 담근 약술을 곁들이면 한층 맛을 돋운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매실.모과.오미자.인삼.대추.더덕.머루 등으로 담근 술항아리들이 줄줄이 놓여있어 전통적이고 고풍스런 분위기를 풍긴다. 산촌민속두부마을(여의도 하남빌딩 지하.02-742-3213)=완전 채식은 아니고 어패류가 약간 가미된 음식점이다. 순두부를 전채로 내고 더덕을 비롯한 각종 나물과 조기구이,두부전 등으로 상을 차려준다. 콩비지찌개,들깨버섯탕,조개로 맛을 낸 된장찌개등 찌개류만 3종류가 나오는게 이집의 특징이다. 그냥 정식이 6천원인데 여럿이 갈 때는 9천원짜리 특정식을 일행수보다 한사람분 적게 시키고 별도음식인 오이소박이를 추가하는 것도 권할만하다. 식사를 마치고 나올 때 무료로 제공되는 콩비지 한 봉지를 집에 가져가면 반찬 걱정 한가지를 덜수 있다. 민속두부마을 체인점들이 서울시내 여러 곳에 있다. 최진섭 음식평론가 MBC PD/choijs@m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