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양주군 회천읍 회암리 회암사터에서 건물터 18곳이 또 다시 확인됐다. 97년부터 회암사지(檜巖寺址. 사적 제128호)에서 발굴조사를 벌이고 있는 경기문화재단 부설 기전문화재연구원과 경기도박물관 조사단(단장 장경호)은 지난 7월 8일 이후 현재까지 제4차 조사결과 고려말-조선전기 건물터 18곳과 각종 유적.유물을발굴했다고 24일 밝혔다. 이번 조사는 회암사터 5단지 동쪽과 4단지(조사면적 2천50평)에 대해 실시됐으며, 이에 따라 지금까지 회암사터에서는 온돌시설이 온전하게 남아 있는 것을 비롯해 건물터만 모두 41곳을 확인하는 기록적인 발굴성과를 낳고 있다. 이번에 확인된 18곳의 건물터는 고려말 회암사 중창 때 목은 이색이 기록해 놓은 건물배치와는 현격한 차이가 있어, 조선시대 들어 왕실의 재정적 도움을 받아 중수.중창이 빈번하게 이뤄지면서 건물배치 또한 지속적으로 변화했음을 보이고 있다고 발굴단은 말했다. 또한 회암사 중심 법당인 보광전 건물터에 대한 내부 추가조사 결과 현재 노출된 건물터 이전에 있었던 고려시대 건물터를 확인했다고 발굴단은 덧붙였다. 이번에 조사한 건물터에서는 지난해 드러난 서승당 건물터와 같은, 한국 건축사에서 흔치 않은 탁상식 구들시설이 드러났다. 이런 구들시설은 침상(寢床)처럼 바닥면보다 높게 구들을 마련한 것으로 세계건축사전에 올라 있는 경남 하동 칠불사의 '亞'자 모양 방과 닮아 있다. 이와 더불어 일종의 야간 조명시설로 송진을 태워 불을 밝혔던 정료대 6곳과 지하배수로 시설이 드러났다. 바깥담장 말고도 건물터와 동서 양측 돌단 사이에는 내부 담장을 따로 설치, 구획했음이 밝혀졌다. 출토 유물로는 기와류, 도자기류, 금속류, 석제품, 토제품이 있다. 기와중에는 용 또는 봉황을 새긴 막새기와가 많아 회암사가 왕실 사찰이었음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발굴단은 설명했다. 도자기중에는 광주 관요에서 제작된 왕실용 자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1611년 광주 탄벌리 가마터에서 제작된 자기도 포함돼 있어 회암사가 폐허가 된 이후 복구과정에서도 왕실의 재정적 도움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밖에도 4단지 문터에서 사천왕상으로 추정되는 조각상의 일부로 보이는 다양한 소조품이 확인됐다. 여기에는 붉은 칠을 하거나 금으로 채색한 것이 있다. 구름과 새를 양각한 돌 벼루는 예술성이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된다. 회암사는 목은 이색이 남긴 글로 보아 고려 중기 이전에 문을 열었음이 확실하며 조선 왕실과도 관계가 밀접해 태상왕으로 물러난 조선 태조 이성계가 머물던 곳이며 그가 왕사(王師)로 초빙한 무학대사가 주석한 곳이기도 하다.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taeshi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