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교 국가 터키는 남녀칠세부동석을 엄격히 지킨다.

딸가진 집이 지붕 위에 항아리를 얹으면 총각들이 돌팔매로 항아리를 맞추어 여자를 데려간다.

이때 부모는 항아리 크기로 처녀에 관한 정보를 주는데 항아리가 작을 수록 예쁘다는 뜻이다.

처자의 얼굴 한번 못보고 결혼하는 총각들은 작은 항아리를 선호했다.

신부측은 경쟁적으로 항아리를 작게 만들었고 결국 콩알만해진 항아리는 자취를 감추었다.

아름다운 풍속 하나가 사라진 것이다"

소설가 이윤기씨의 소설집 "두물머리"(민음사)에는 인간의 욕심이 얼마나 한없는 것인지를 암시하는 단편 "네크로폴리스"가 실려있다.

작가는 "인간아 인간아"하는 장탄식으로 소설을 맺는다.

단편 "숨은그림찾기-함지산"도 마찬가지.

주인공은 터키에서 고향의 "함지산(봉우리가 평평한 산)"과 같은 것을 발견하고 한참 떠들어댄다.

운전수가 "당신이 지금 달리고 있는 이 땅이 함지산의 윗부분이다.
당신 눈에는 저 멀리 작은 함지산만 보이고 발 아래 큰 함지산인 고원은 보이지 않는가"라고 대꾸한다.

인간이 존재의 현실에 얼마나 무지한지 알려주는 대목이다.

남성 취향의 이 소설집엔 반전의 묘미가 살아있다.

다소 거친 면이 없지 않지만 삶의 지혜를 일깨우는 촌철살인의 경구들이 많다.

첫머리를 장식하는 단편 "진홍글씨"에서 작가는 간통이란 뜻을 가진 "어덜터리(Adultery)"의 A대신 여전사 "아마존(Amazon)의 A로 글자를 바꿔달자고 주장한다.

빛깔도 색정적인 주홍에서 핏빛 진홍으로 변해야한다.

저자는 믿었던 남편에게 배신당하는 한 여자를 통해 "사랑은 특권이지만 싸움은 원칙이므로 특권을 원칙에 앞세우는 일은 말아야한다"고 충고한다.

문학평론가 이남호씨가 "맛있다"고 상찬한 이씨의 소설들은 독특한 분위기를 지닌다.

20년간 2백여권의 책을 번역한 저자는 동서고금을 아우르는 박학다식을 자랑한다.

거기에 인간적인 따스한 시선이 겹쳐진다.

수녀와 비구니,한 남자가 산사에서 하루 저녁을 같이 지내는 이야기엔 유행가 가사라는 다음 구절이 등장한다.

"장미같은 네 마음에 가시가 돋쳐/이다지도 어린 넋이 시들어졌네/사랑과 굳은 맹세 사라진 자취/두번 다시 피지 못할 고운 네 모양//"

멜로디는 나와있지 않지만 따라서 흥얼흥얼 노래가 나올 것 같은 싯구이다.

작가 이윤기씨는 후기에서 "거짓된 진실,혹은 진실한 거짓을 쓸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다"며 "모순을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모순을 지어내야한다"고 했다.

이씨는 1977년 중앙신춘문예로 등단한뒤 20년간 번역가로 활동하다 1998년 소설가로 창작 활동을 재개했다.

대표적인 역서로 "장미의 이름""그리이스인 조르바"가 있다.

윤승아 기자 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