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서명 :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
저자 : 괴테
역자 : 김숙희 외 공역
출판사 : 민음사
가격 : 전2권, 1만2천원/1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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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탄생 2백50주년을 맞은 괴테의 만년 노작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김숙희 외 공역, 민음사, 전2권, 1만2천원. 1만원)가 출간됐다.

이 작품은 93년부터 괴테 읽기에 전념해온 독회그룹 "괴테시대의 문학"
회원 17명이 공동으로 번역한 것이다.

여러 사람이 한 부문씩 떼어 번역하는 분담형식이 아니라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 전체적인 맥락을 정리한 뒤 초벌 원고를 대표 필자가 마무리하는 방식을
택해 관심을 끈다.

그만큼 깊이가 있고 체계적이다.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는 알프스 산악지대를 편력하는 주인공
빌헬름을 통해 산업화로 접어들고 있는 유럽의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다.

괴테는 52세때인 1807년에 이 작품을 쓰기 시작해 14년 후인 1821년에 1판을
출간했다.

그 뒤 곧바로 개정 작업에 들어가 운명하기 3년전인 1829년에야 최종판을
내놓았다.

무려 22년 동안 이 작품에 매달린 것이다.

발표 당시에는 독자들의 관심을 별로 끌지 못했다.

줄거리 중간중간에 액자소설 형태로 끼여든 "노벨레"들과 잠언들이 기존의
형식을 해체한데다 구체제의 붕괴와 기계의 시대로 접어든 사회상 묘사가
일반인들에게는 낯설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혁신적인 내용과 형식으로 인해 이 작품은 "파우스트"와 함께 괴테
문학의 큰 대척점을 이루고 있다.

줄거리는 전편격인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와 연결된다.

수업시대에서 빌헬름은 시민사회내에서 연극(예술)을 통해 자신을
해방시키고자 노력하는 사람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혁명을 거치고 구체제의 몰락을 경험한 빌헬름의 눈에 비친 세계는
시민사회의 문제를 뛰어넘어 새로운 국면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수업시대는 산업화, 기계화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을 신대륙 아메리카로
이주시키는 일을 준비하는 모임인 "탑의 모임"으로부터 빌헬름이 수업증서를
받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편력시대에서 빌헬름은 아들 펠릭스와 함께 편력의 길에 나선다.

그는 "사흘 이상 한 곳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다음의 숙소는 그 이전의
숙소보다 최소 1마일 이상 떨어져야 한다"는 모임의 계율을 지키면서 알프스
산악지대를 여행한다.

그 여정에서 여러 사람을 만난다.

미국에서 태어났으나 구대륙으로 돌아와 이상향을 일구는 대지주 아저씨,
영혼에 얽힌 문제를 지혜롭게 풀어주는 마카리에 아주머니, 신대륙으로
건너가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고자 하는 조카.

그들과의 만남은 그의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 작품의 중요한 모티브는 기계의 도입과 전통적인 가내 수공업의 몰락,
이에 따른 실업자의 배출이라는 사회현상이다.

시대 배경을 산업화의 태동기로 설정한 의도가 곳곳에서 드러난다.

괴테는 편력자 빌헬름을 통해 몰락한 사회의 실상과 이 몰락을 타개해보려는
당대의 인물들을 보여준다.

방적.방직기술을 익히는 레나르도, 광산업에 몰두하는 몬탄 등이 새로운
사회상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작가는 이들의 사상을 통해 "기술력"과 "새로운 세계(신대륙)"로의 이주를
대안으로 부각시킨다.

괴테가 편력시대에서 역설하는 것은 "체념"이다.

이 책의 부제 역시 "체념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여기서의 "체념"은 무기력한 포기가 아니라 영웅적인 한 시대가
저물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공동체 내에서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참여해야 한다는 도덕적인
의식을 담고 있다.

이 소설에서 더 이상 영웅적인 주인공이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빌헬름은 단지 인간 사이를 떠돌면서 그들의 생각을 전달하는 매개자일
뿐이다.

이 작품에는 괴테 평생의 신념이 담겨져 있다.

그것은 한마디로 진정한 인도주의, 즉 휴머니즘의 실현이다.

그 신념은 멀고 먼 편력의 과정을 거쳐 신세계 공동체에 유용한 인간으로
거듭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그는 큰 조직을 위해 자신을 제한할 줄 아는 미덕과 위대한 공동체의
세계에 참여하는 방식을 제시한다.

이 작품에서 시간의 요소가 배제된 것은 매우 중요하다.

과거나 현재나 출발점은 똑같다.

따라서 새로운 변화의 세기를 맞고 있는 지금 2세기 전의 대문호가 가리키는
"이상적인 사회로의 이정표"는 더욱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 고두현 기자 kd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2일자 ).